외국기업 치고 들어온 철도산업… 부품사의 호소 “다 죽는다”

입력 2022-09-03 14:24

해외업체들이 한국 철도시장을 거세게 공략하고 있다. 특히 중국 철도 부품업체들이 ‘싼 값’을 무기로 치고 들어오면서 국내 업체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자국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펼친 것처럼, 철도산업에서도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는 자국 기업 보호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2일 관세청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은 중국에서 철도차량부품 1948만3000달러(약 263억원)를 수입했다. 지난해 7592만5000달러(약 1025억원)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 기간 무역적자 규모는 1705만6000달러(약 230억원)에서 7300만4000달러(약 985억원)로 치솟았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입찰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저가 중국산 부품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부품업체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가격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품질개선 유인도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만 이런 게 아니다. 다른 해외업체도 국내 고속철도 시장 진입에 나서고 있다. 스페인 철도차량 제작사 ‘탈고’는 코레일이 발주하는 136량짜리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EMU-320 사업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탈고는 ‘동력분산식’ 고속차량을 제작해 납품한 경험이 없다. 국내 철도차량 입찰 제도는 응찰가를 가장 낮게 적어낸 업체가 수주하는 ‘최저가 입찰제’를 적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력이나 품질이 아닌 최저가가 우선되는 ‘치킨 게임’이 벌어졌다. 완성차 업체들이 저가의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단가를 낮춰 입찰 경쟁에 나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내 부품사들은 입찰제도 개선 등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나섰다. 철도차량 부품산업 보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1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과 SR 등에 호소문을 제출했다. 비대위는 “경쟁을 명분으로 해외업체의 무분별한 국내 고속차량 사업 입찰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발주 물량이 해외 업체에 몰릴수록 기술 자립은커녕 해외에 종속되고 이는 국내 산업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해외 업체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되면 영세 사업장이 전체의 96%에 달하는 협력 부품 업체의 생존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철도는 국가기반시설인 만큼 외국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유럽은 시행사가 입찰초청서를 발송한 업체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자체 규격 기준인 ‘TSI’를 마련해 비유럽국가의 진입을 사실상 차단했다. 중국은 철도차량 입찰시 중국 법인과 공동응찰을 의무화했다. 또 완성차는 70% 이상, 전장품은 40% 이상 자국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 미국은 재료비의 70% 이상을 현지에서 사용해야 한다. 일본은 아예 해외업체는 시장에 진입할 수 없도록 원천봉쇄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