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독립한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정회원이 될 수 있을까.
세계교회협의회(WCC) 11차 총회 셋째 날인 2일 독일 카를스루에 콩그레스센터에서 열린 주제별 전체 회의에서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세계 교회의 관심과 침묵하는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다.
‘유럽’을 주제로 한 이날 회의에서는 시종 우크라이나 전쟁 참상과 구호 상황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다. 1000여명이 참석한 회의에 러시아정교회 대표들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소속으로 체르니히브와 니즈친의 예브스트라티 대주교는 “제정 러시아는 물론이고 구소련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우크라이나의 독창성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우크라이나인은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예브스트라티 대주교는 “그 누구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축복할 권리가 없고 전쟁 범죄와 집단 학살을 정당화할 권리도 없다”면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정부를 두둔하는 러시아 정교회를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러시아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WCC에 단독 가입하고 싶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교회 산하에 있던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대다수는 2018년 러시아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만들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이듬해 바르톨로메오스 정교회 세계 총대주교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립을 허락했다. WCC는 11차 총회에 독립한 우크라이나 정교회 대표들을 초청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WCC에 가입하는 데 절차상 문제는 없다.
WCC 회원 가입 절차는 ‘신청서 작성’ ‘회원교회 의사 청취’ ‘중앙위원회 최종 결정’ 순이다. 일반적으로 최소 5만명 이상의 교인이 있는 교회여야 회원 신청을 할 수 있다.
이날 예브스트라티 대주교가 “우크라이나 국민의 80%가 독립한 우크라이나 정교회 소속”이라고 밝힌 걸 고려하면 교인 최소 기준을 충족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4300만여명의 우크라이나 인구 중 3400만여명 이상이 독립한 정교회 교인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강력한 반발은 변수다. 한 총대는 “러시아 정교회 대표들 사이에서 WCC 탈퇴하자는 말까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카를스루에의 분위기에 대해 러시아 정교회가 몹시 심기가 불편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단독 WCC 가입 안건이 올라오면 러시아 정교회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자명하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WCC 개회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영국성공회 등 유럽의 몇몇 교회는 공개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의 WCC 회원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1억 6000만명의 교인이 있는 러시아정교회는 1961년 WCC에 가입했다. 1948년 창립한 WCC의 74년 역사상 몇몇 교회가 스스로 탈퇴한 일이 있지 WCC가 나서서 회원권을 박탈한 사례는 없다.
논란의 포문은 31일 콩그레스센터를 방문해 기조연설을 했던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연방 대통령이 열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작심한 듯 러시아 정교회를 반복해 맹비난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목표물에 대한 ‘달콤한 폭탄 테러’ 뿐 아니라 각종 전쟁 범죄와 종교 유적지 파괴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이런 일에 침묵하는 러시아정교회 지도자들은 완전히 반종교적이고 신성모독적인 길로 신자들을 이끌고 있다”고 힐난했다.
러시아정교회는 즉각 반발했다. 러시아정교회 대외 관계 부서의 한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분쟁’의 맥락에서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의 모든 인도주의적 노력을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무시했다”면서 “대통령의 주장은 위협에 가까운 압력이었다”고 밝혔다.
WCC는 대화를 통한 조율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안 사우카 WCC 총무대행은 “WCC는 회원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도록 도전하고 참여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카를스루에(독일)=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