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WCC) 11차 총회가 진행 중인 독일 카를스루에 콩그레스센터에 반러시아 정서가 확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반발과 러시아정교회의 침묵 때문이다.
당초 영국성공회 등 유럽의 교회들은 러시아정교회의 WCC 회원권을 박탈하라는 요구를 공공연히 했다. 1억 6000만명의 교인이 있는 러시아정교회는 1961년 WCC에 가입했다. 하지만 WCC는 ‘모두와 대화한다’는 기존 입장에 따라 러시아정교회 대표들의 총회 참석과 관련해 어떤 제재도 하지 않았다.
논란의 방아쇠는 31일 11차 총회를 방문해 기조연설을 한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연방 대통령이 당겼다.
독일 의전서열 1위인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이날 작심한 듯 러시아정교회를 비난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목표물에 대한 ‘달콤한 폭탄 테러’ 뿐 아니라 각종 전쟁 범죄와 종교 유적지 파괴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이런 일에 침묵하는 러시아정교회 지도자들은 완전히 반종교적이고 신성모독적인 길로 신자들을 이끌고 있다”고 힐난했다.
러시아정교회는 즉각 반발했다. 러시아정교회 대외 관계 부서의 한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분쟁’의 맥락에서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의 모든 인도주의적 노력을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무시했다”면서 “대통령의 주장은 위협에 가까운 압력이었다”고 밝혔다.
WCC는 대화를 통한 조율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안 사우카 WCC 총무대행은 “WCC는 회원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도록 도전하고 참여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마리안 에이더스텐 WCC 대변인도 “WCC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 기독교인을 한 식탁에 모을 수 있는 단체가 없다”며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콩그레스센터 주변에서는 총회 기간 중 우크라이나정교회와 러시아정교회 대표들이 단독으로 대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WCC는 이번 총회에 2018년 러시아정교회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정교회(Orthodox in Ukraine) 대표를 초청해 양국 정교회 대표가 모두 한 자리에 있는 상황이다. 다만 유럽 이슈를 다루는 회무가 예정돼 있는 만큼 우크라니아 전쟁에 대한 WCC의 공식 입장이 나올 지 여부에는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2일 “신 냉전적 국제 정서의 포로로 잡혀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정교회가 결국 신앙 안에서 형제의 우애를 확인해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면서 “전쟁 중인 유럽에서 열린 총회 기간 중 세계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끈다는 대원칙에 입각해 화해를 향한 신앙적 전략과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를스루에(독일)=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