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는 절정이에요, 근데 해외 한국학은 위기입니다”

입력 2022-08-31 13:43
우미성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 최현규 기자

한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의미 있는 국제학술행사가 최근 국내에서 연달아 열렸다. 제21회 국제대중음악학회 학술대회가 지난달 5~9일 대구에서, ‘제3회 BTS국제학술대회’가 지난달 14~16일 서울에서 열렸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지난 4일 서울에서 개최한 ‘2022 KF 글로벌 한국학 포럼’에는 26개국에서 온 100여명의 한국학 전문가들이 참가했다.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열린 쟁쟁한 행사들이 K컬처와 그 인기를 기반으로 한 한국학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한류를 단순히 유행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연결해 한국학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이 글로벌 파워로 등극하는 과정에는 해외에서 그들에 대해 가르친 학자들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학과 일본학을 연구하는 후속 세대들이 양성됐고, 중·일의 소프트 파워가 커졌다. 한국도 이제 그럴 시점이 왔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의 첫 여성 원장인 우미성 영어영문학과 교수의 말이다. 공연예술학을 전공하고 동아시아 문화 연구와 한국학 진흥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온 그에게 한류 현상과 글로벌 한국학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들었다.

-먼저 한류라는 용어의 숨은 뜻부터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어떤 의미인가.

“한류(韓流)는 1990년대 후반 H.O.T의 중국 진출을 계기로 만들어진 단어다. 영어로 코리안 웨이브(Korean wave)로 번역됐는데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는 파도처럼 일시적인 것이라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그런데 우리 미디어들이 한류라는 말을 그대로 역수입해 썼다.”

-그러고 보니 유럽에서 18세기에 중국풍이 불었을 때는 시누아즈리(Chinoiserie), 19세기 일본풍 때는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21세기의 한국풍은 웨이브가 됐다.

“유럽인들은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게 평가했다. 다른 세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트렌드를 앞서가는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중국이 이름 붙인 한류에는 폄하하는 듯한 부정적인 느낌이 깔려 있다. 한국의 문화적인 힘을 얘기하지 않는 것이다.”

-한류는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hallyu’와 ‘Korean wave’로 나란히 실렸다. 최근 들어 K컬처나 K콘텐츠라고도 하지만 한류를 대체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촉발지가 한국이니까 한국의 모든 것에 K를 붙여서 브랜딩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K 하나가 모든 걸 설명하는 신호등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한류를 계속 쓰더라도 한류라는 단어가 시작된 배경을 알면 좋겠다는 의미다. 그 부정적인 뉘앙스를 인지하거나 다른 용어로 서서히 바꿔나가자는 고민과 문제의식이 함께 있었으면 한다. 아울러 한류를 전략적으로 더 길게 더 수준 높게 확산시키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류의 발전 과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1세대 아이돌 H.O.T와 드라마 '겨울연가', 싸이의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왼쪽부터). 국민일보DB

-한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예컨대 지난 6월 BTS가 단체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을 때 가수협회장이 재고 요청을 했을 만큼 많은 이들이 K팝의 기세가 주춤할 것을 우려했다.

“처음 한류를 말했던 어떤 이들은 2~3년, 길게 잡아야 10년 정도 이어지다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흐름이 20년째 계속되고 확장되고 있다. 한류가 단명할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벗어났고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되리라고 본다.

한류는 대중문화를 넘어 문학과 미술로 확장되고 있고, 곧 공연계로도 확장될 것이다. 줄리아 조 같은 한국계 작가들이 쓴 작품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됐고, 뮤지컬 ‘케이팝(KPOP)’이 내년 봄에 재공연될 예정이다. K팝 시장에 발을 들인 젊은이의 성공담으로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다. MZ세대 한국계 작가 셀린 송이 쓴 ‘엔들링스’도 2020년에 이어 다시 무대에 오른다. 만재도 해녀 할머니 세 명의 이야기로 무대 미술적으로도 획기적이다. 커다란 수족관을 무대 위에 만들어 해녀들이 거북이와 물고기들과 유영하는 장면을 실제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브컬처나 마이너리티 문화로 여겨지던 한류가 그야말로 문화적 매력을 통해 한국에 호감을 갖게 만드는 소프트 파워가 됐다는 것에 이견이 없어진 건가.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2011년 풀브라이트 방문학자로 하버드대가 있는 보스턴에 가면서 미국 대학의 동아시아 학자들과 교류하게 됐다. 그때도 한국 영화에 관심을 갖는 분들은 있었지만 그 지역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분은 없었다. 2016년 코넬대 아시아학과 한국학 방문교수로 갔을 때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학생들이 BTS의 ‘봄날’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간판에 어떤 은유적인 의미가 있냐고 물어보고, K팝 나이트 행사에서 자이언티의 ‘꺼내 먹어요’를 부른 학생이 학생들 현장 투표로 1등을 했다.”

-몇몇 K팝 아이돌의 음악만 즐기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말씀이다.

“위로가 되는 ‘꺼내 먹어요’의 가사에 학생들이 주목했다. 학생들의 취향에 깜짝 놀랐다. 2020년 에모리대 방문교수 때는 학생들이 한국 역사를 배우고 싶어 했다. 수업 정원이 초과됐는데 학생들이 헬조선이라는 단어도 알고 있고, 한국어로 어느 한국 컵라면이 자기 취향이라고 대화를 나누는 걸 보고 완전히 한국 문화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우 원장은 그 외에도 ‘공효진은 마이너리티 소수자적 감성을 보여주는 배우’라며 팬을 자처하는 코넬대 도서관 사서, MOU를 논의하는 줌 회의에서 대뜸 비비고 만두가 맛있다며 한국 음식 얘기를 꺼낸 예일대 교수, BTS와 블랙핑크를 좋아한다면서 한국인들은 아름답다고 말을 걸어온 프랑스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독일 베를린자유대 이은정 교수는 한국학이 개설된 유럽의 모든 대학이 학생 수의 폭발적인 증가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했다. 한류 효과로 세계 각국의 여러 대학에 한국학과가 신설되고 한국어 강의가 늘고 있다는데.

“한국에 대해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많은데 교수가 부족하다. 제가 동서문제연구원장이 되고 나서 한국국제교류재단을 통해 11개국 19개 대학에 수업 보내기를 시작했다. 연세대 교수들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제공하면 학점은 현지 대학에서 받는다. 코로나19로 줌 시대가 열리면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재미있는 것은 대학마다 요구가 다르고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조지아공과대는 한국어로 한국의 20세기 정치외교사와 문화사를 가르치는 수업을 주문했다. 일본 도쿄대 경제학과는 딱 집어서 한국이 어떻게 초고속 성장을 이뤘는지에 대한 강의를 요청했다.”

-한류의 약진이 한국학 발전의 동력으로 잘 이어지고 있나.

“한류 때문에 한국학이 도약하고 있다는 것은 착각과 환상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 넘쳐나는 학생들은 K컬처에 관심이 있어서 교양과목을 들으러 오는 경우고, 전공으로 진지하게 연구하는 대학원생은 줄어드는 추세다. 예컨대 한국 드라마를 연구해 교수로 임용될 가능성은 적다. 외국 대학의 동아시아 학과에서는 한류를 가르치는 교수를 뽑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시각으로는 조선 시대나 식민지 시대 연구가 학문적이고 대중문화 연구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학부에서의 재미가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로 연결이 되고, 한국학이 전도유망하다는 미래가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대학원생이 줄어든다.”

-전공하는 대학원생은 아니더라도 많은 학부생들이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간다는 점은 한국학의 기회가 아닌가.

“미국 대학의 교수들은 한결같이 지금 해외에서의 한국학은 위기라고 말한다. 일본학, 중국학과의 경쟁 구도가 형성돼 견제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 일본학을 부흥시키자는 뜻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 2500만 달러(300억원)를 기부했다. 컬럼비아대는 유니클로 회장의 후원금으로 한국학 전공 대학원생을 뽑던 정원을 돌려 일본학 전공자를 더 뽑았다. 그럼 학생들은 한류는 취미로 남기고 전공은 일본학을 택하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논문을 쓰면서 김영하 작가를 살짝 끼워 넣는 식으로. 그리고 일본학 교수가 된다. 한류는 한국학의 모멘텀이지만 한국학 자체로는 전환기이자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교육과 콘텐츠로 한국학을 연결해 외국 대학에 친한파 지한파 학자들과 학문 후속 세대들이 많이 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해외 연구자들과 소통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그를 통해 한국의 세계 속 위상도 확보해나갈 수 있다. 10년, 20년 후에 한국학이라는 말이 필요 없이 해외에서 한국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들이 문학 미디어 예술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 포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목표일 것이다. 한류를 이끄는 K드라마와 K무비, K팝 크리에이터들은 정말 잘하고 있다. 한류를 교육으로 연계하는 학자들이 제 몫을 할 때다.”

우미성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 최현규 기자

-한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중국과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도 반(反)한류의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K컬처를 한국 정부의 주도와 투자로 성공한 일종의 관제 수출상품처럼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대표적이라고 하는데.

“한류 연구 초창기 논문 몇 편에 늘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공원’ 한 편이 거둬들인 수익이 한국이 자동차 몇만 대를 수출한 숫자를 상회한다며 문화상품을 육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인용이 된다. 또 김대중정부에서 문화콘텐츠가 정부 차원의 많은 지원을 받았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한류는 한국 정부가 주도한 전략의 승리라는 뉘앙스로 끌고 나가는 논문이 많다.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 정부가 뒤늦게 소프트 파워의 가치에 눈을 뜨긴 했으나 그것이 한류를 견인해온 힘은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정부가 정책 홍보에 지나치게 한류를 활용한다고 정반대로 비판하는데 말이다.

“해외 학자들이 아직도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다. 정부가 한국의 브랜딩 파워를 끌어올리는 데 K팝 가수들이나 문화 생산자들을 이용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일본은 문화적인 내셔널 브랜드의 가치를 우리보다 150년 앞서 알았던 나라다. 일본은 1851년 영국 런던 엑스포 때 기모노 차림을 한 여성들이 다도를 선보였고 1893년 미국 시카고 엑스포에는 일본식 정원을 만들어 인기를 모았다. 고종은 그 엑스포에 조총을 보냈다.

한국은 이제야 내셔널 브랜딩을 시작했는데, 정부가 지나치게 드러나거나 나서지 않는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해외 학자들을 지원하면서 재단의 영어 이름인 코리아 파운데이션 교수라는 직함을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마이너스다. 자칫 그 교수의 연구가 한국의 프로파간다(선전활동)로 의심받기 때문이다.”

-다시 K에 대해 돌아가면, 예능 ‘너의 목소리가 보여’를 24개국에 수출한 CJ ENM 이선영 총괄 프로듀서는 이제는 K를 떼야 할 때라고 말하는 반면 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교수는 한국적인 K(Koreanness)를 강조하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장님은 어느 쪽인가.

“양자를 선택하라는 질문에 최악의 답이자 최선의 답은 투웨이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K를 드러내지 말자는 것은 제작할 때부터 한국 시청자가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이 본다는 큰 스케일으로 접근하고, 콘텐츠를 판매할 때 세련되고 쿨한 전략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디에서 크리에이티브한 소스를 얻을 것이냐의 관점이다. 펌프에 물이 말라 있으면 한국의 깊은 산속 샘물에서 마중물을 떠오라는 취지다. ‘오징어 게임’이 기발했던 것 중 하나는 황동혁 감독이 우리가 어릴 때 했던 게임들을 자신의 향수에서 끌어왔다는 점이다. 영감을 어디에서 끌어올 것인가 말할 때 그처럼 한국적인 것에서 찾아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 한류와 한국학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리라고 보나.

“한국이 개인주의적·문화적 인권 이슈를 깨닫게 된 건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의 일로 얼마 되지 않았다. 톱다운(하향식)에서 개인으로 관심사가 좁아지면서 점점 개인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문화콘텐츠도 ‘국제시장’이나 ‘박하사탕’처럼 나라에 휘둘린 개인들의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개개인의 아픔과 삶을 얘기하는, 그래서 국가의 영향력이 엷어지고 최소화돼서 보이는 콘텐츠들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한류의 미래에 대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외국에서 더 많이 한류를 배우려 할 것이고, 외국 학생들도 한국 대학에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연세대 국제대학원에 외국 학생들이 몇백 명씩 오고 있고, 썸머스쿨에 1000~2000명씩 오고 있다. 대단한 변화이고 앞으로 재밌는 일도 더 많아질 것이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