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건전재정’ 기조를 강조하며 단행하기로 한 24조원 규모 지출 구조조정은 주로 문재인정부의 역점 사업에 집중됐다. 지역사랑 상품권(지역 화폐) 예산은 전액 삭감됐고 신재생에너지와 수소전기차 보급 예산도 크게 줄었다. ‘예산 퍼주기’ 비판을 받은 직접 일자리 사업은 예산 규모가 유지되지만 민간·시장 중심으로 재구조화될 예정이다.
3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역 화폐 예산은 내년 예산안에서 한 푼도 책정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는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 경기 회복을 위해 지역 화폐 할인율 10% 중 4%에 해당하는 재원을 중앙정부 예산으로 지원했다. 현 정부는 이제는 소비 심리가 회복돼 중앙정부 지원 없이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완섭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지난 25일 사전브리핑에서 “지역 상권과 소비가 살아나는 상황에서 지역 화폐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것보다 저소득층·취약계층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지역 화폐는 지역주민 만족도가 높아 지역구의 여야 의원들이 선호하는 예산이다. 지난해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지역 화폐 예산은 정부 제출안보다 2.5배 늘어났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시절 확대를 추진한 사업이어서 국회 다수인 야당이 예산 복구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정부가 중점을 뒀던 신재생에너지 보급 관련 예산도 쪼그라들었다. 올해 3214억원이던 신재생에너지 보급지원 예산은 내년에 2470억원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그린 스마트 스쿨 조성(-982억원), 스마트 공장 구축 및 고도화(-2136억원), 청정대기전환 시설지원(-1864억원) 등 한국판 뉴딜 사업 다수도 지출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수소차 보급 예산도 3600억원으로 올해(6221억원)보다 42%가 줄어든다. 그간 정부는 수소차 공급 확대를 위해 국비 보조금 2250만원과 지방비 보조금 1000만~1200만원을 지급해왔다. 그러나 수소차 지원 차종이 1종으로 제한적이고 충전 인프라 등이 갖춰지지 않아 실집행률이 낮은 상황을 고려해 예산이 감축됐다. 2019년 73.5%였던 실집행률은 지난해 54.6%까지 하락했다.
빈 강의실 불 끄기, 금연구역 지킴이 등 ‘세금 알바’로 비판받던 직접 일자리 예산은 올해(3조2095억원)과 비슷한 3조1177억원으로 편성된다. 정부는 예산 규모는 유지하는 대신 공공일자리를 줄이고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사업을 재구조화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올해 노인 일자리 중 60만8000개였던 공공일자리를 내년에는 54만7000개로 줄인다. 대신 민간·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를 3만8000개 늘린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직접적인 단순 노무형 일자리는 줄이고 민간의 노인 일자리는 늘어나는 흐름을 가져가기 위해 예산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