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전 재정 기조로 전환하기 위해 내년 지출을 크게 줄이면서 공무원 인건비는 ‘허리띠 졸라매기’의 표적이 됐다. 장차관급은 내년 보수 10%를 반납해야 하고, 4급(서기관) 이상 공무원의 보수는 동결된다.
다만 5급 이하 공무원 보수는 1.7% 인상된다. 하위직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2년 연속된 소폭 인상에 고물가 상황에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면서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 5년 평균 공무원 임금 인상률(1.9%)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5.0%)을 감안하면 여전히 상당히 박한 수준이라는 지적은 여전하다.
5급 이하 1.7%↑… 9급 1호봉 내년 기본급 170만원
정부는 30일 국무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2023년 예산 정부안을 확정했다. 내년 예산안 기조를 ‘건전재정’으로 설정하고 24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사상 최대 규모이자 예년 지출 구조조정 규모의 2배 수준이다.
국민 세금이 주를 이루는 수입을 임의로 늘리기 어려운 만큼, 지출을 최대한 줄여 재원을 확보하려는 조치다. 올해 공무원 인건비 예산(중앙정부 기준)은 41조3000억원으로 본예산 607조7000억원 의 6.8%를 차지했다.
내년도 공무원 보수 인상률을 억누르는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그중 장·차관급의 임금 동결 및 10% 반납은 앞서 확정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내년 본예산 총지출 규모를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올해 지출보다 줄이기로 했다”면서 “공공 부문의 솔선수범 차원에서 장·차관급 이상의 임금은 동결하되 10%를 반납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봉 10%를 반납하게 될 공무원은 지난 5월 기준 장관급 35명, 차관급 107명 142명이다. 이들이 내년 올해와 같은 연봉을 받으면 반납할 보수의 총액은 2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2019년부터 동결 기조를 보였던 고위공무원단 임금은 5년 연속 동결이다.
5급 이하 공무원의 보수 인상률은 1.7%로 책정됐다. 인사혁신처 산하 공무원보수위원회는 최근 인상안으로 1.7~2.9%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는 그동안 공무원보수위 안보다 낮은 수준에서 인상률을 결정했지만 이번만큼은 안의 하한선 수준에서 맞춰준 것이다.
올해 9급 공무원 1호봉 월급(기본급 기준)은 168만원이다. 1.7% 인상분(2만8560원)을 반영하면 내년 월급은 170만원을 조금 넘어선다. 그래도 월 단위(노동시간 209시간 기준) 환산 내년 최저임금 201만508원(시간당 9620원)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
고위 공무원 보수 반납·동결 방침은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해 민생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지출 재구조화는 집행 상황을 점검하고 유사·중복 사업을 걸러내던 기존 지출 구조조정보다 더 강력한 방식이다. 기존 예산을 잘라내는 폭이 더 크기에 사회 구성원들의 고통도 커질 수밖에 없다.
추 부총리는 예산안 브리핑에서 내년 공무원 임금과 관련해 “건전재정 전환은 누적된 국가채무위험과 국가 경제 장래를 생각할 때 미룰 수 없는, 힘들어도 가야만 하는 과제”라며 “정부부터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면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시험 붙어도 걱정… 결혼도 사치” 공시생 한탄
하위직 공무원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 사이에선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공무원 사기 진작 차원에서 2%대 가능성도 일부 제기됐던 것을 생각하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또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4.5%)를 생각하면 실질 급여는 삭감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공무원 임금은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동결한 이래 매년 상승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로 2021년(0.9%)과 올해(1.4%), 내년까지 3년 연속 저조한 인상률을 기록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공시생)’의 한 회원은 “대기업도 아니고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요구하는 것인데, 막막한 심정”이라며 “공무원 합격이라는 목표를 이루고도 결혼조차 사치인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누리꾼도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5.0%)과 물가 오른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삭감한 것”이라며 “정작 취업준비생 시절 받던 아르바이트 시급보다도 낮다”고 지적했다.
이미 하위직 공무원 사이에선 실질 임금이 대폭 감소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앞서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은 오르는 물가와 비교하면 2년간 실질임금이 약 4.7% 삭감됐다고 밝혔다.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서공노)은 전날 하위직 공무원의 급여 명세를 공개한 뒤 합리적인 수준의 보수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 나라 하위직 공무원은 대체 어찌 살아가야 하나”라며 “올해 물가인상률은 5%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내년 최저임금도 올해 대비 5% 인상키로 결정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내년 공무원 보수 인상을 1% 안팎에서 조율하고 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는 7% 수준의 인상안을 제시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는 같은 문제로 시끄럽다. 한 회원은 “강도 높은 감정·육체 노동이 병행하면서 쥐꼬리 월급을 받고 있다”며 “정부는 왜 우리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가. 물가상승률만큼이라도 올려주라는 게 그렇게 부당한 것인가”라고 한탄했다.
다른 누리꾼은 “이제 MZ세대에 8~9급 공무원의 메리트는 사라졌다”며 “이미 코로나 비상근무와 지나친 야근으로 ‘워라밸’도 없어진 상황이다. 정부는 젊은 세대가 힘들게 시작한 젊은 공무원을 퇴직하는 이유를 고민해봐야 한다”라고 적었다.
실제로 가속화된 젊은 공무원들의 이탈은 수치로 확인된다. 공무원연금공단 자료를 보면 지난해 재직기간 5년 미만의 공무원들이 1만693명이나 공직사회를 떠났다. 이중 2030세대가 81%를 차지했다. 또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올해 9급 국가직 공무원 경쟁률은 29.2대 1은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7급 공무원 경쟁률도 42.7대 1로 4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