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공급망 붕괴에 경기 침체 우려까지… 산업계 ‘초비상’

입력 2022-08-29 16:15 수정 2022-08-29 19:21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산업계는 초비상 상태다. 일반적으로는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은 가격 경쟁력을 높여서 수출에 유리하다. 하지만 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상황은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촉발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는 원자재 가격의 폭등을 불러왔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여파로 경기 침체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기업들 셈법은 복잡해지고 있다.

환율이 계속 오르고 있는 데도 수출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한국 기업과 경쟁하는 관계에 있는 대부분 국가의 환율도 올랐다. 달러화 강세가 압도적인 것이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실장은 “한국보다 환율이 더 오른 나라도 있다 보니 ‘환율 효과’는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주요 대기업은 생산기지를 해외로 많이 이전한 상태여서 환율 변화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이익도 미미하다.

또한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희석된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업 부담은 한층 커졌다. 한국 기업들은 수입 원자재 대금을 결제할 때 대부분 달러로 한다.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원자재 수입 가격도 같이 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결제 통화별 수입 비중에서 달러가 80.1%로 가장 많다. 달러로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을 지급해야 하는 항공사들은 이미 ‘고환율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환율이 10원 변동하면 약 350억원의 외화평가손익이 발생한다.

이상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팀장은 “환율이 상승하면서 수입 단가가 오르고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의 채산성이 나빠지면서 비용 상승분을 가격에 전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무역협회의 ‘국제원자재 가격과 원화환율의 변동요인 및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동시에 10% 상승하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반면 수입 금액은 3.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흐름이 이어진다면 무역적자는 더 커지게 된다.

복합위기로 경영 압박에 짓눌리면서 기업들의 투자 및 채용계획도 축소되거나 유보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미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 자체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보류했다. SK하이닉스도 청주 공장 증설을 멈췄다. 대규모 투자의 경우 금융기관 차입이 필요하고, 금리가 오르면 그만큼 비용 부담도 증가하기 때문에 투자가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7월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금리 인상,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언급하면서 “투자계획이 지연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준엽 황인호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