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규제 폐지 논의가 뜨겁다.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금지, 매월 2회 의무휴업’을 골자로 하는 영업규제가 「유통산업발전법」에 도입되어 시행된 지 10년만이다. 위 규제 관련 법안은 이명박 전 정부가 경제민주화, 경제주체의 생존권과 근로자의 휴식권 보장이라는 사회적 아젠다를 달성하기 위해 제안했던 것이다. 당시 대형마트 업계는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법원은 최종적으로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고, 헌법재판소 역시 관련 법조항의 위헌성을 부정하였다.
윤석열정부는 국민의견의 국정 반영을 위한 창구로서 ‘국민제안’ 제도를 신설하였는데, 지난달 31일 마감된 투표 결과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선정 안건 중 최다 득표를 했다고 알려졌다. 비록 투표과정에서 중복투표가 다수 발견되어 공식적 순위 발표는 무산되었지만, 해당 안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 등은 이달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는 대기업 독과점과 유통시장 거래질서 왜곡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장치”라면서 그 폐지를 규탄했다. 이에 대해 ‘코로나19피해 자영업 총연합’과 ‘골목상권 살리기 소비자연맹’ 등은 18일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는 오히려 주변 골목상권을 위축시켜 자영업자들에게 부정적이므로 폐지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냈고, 대형마트 영업규제로 인해 관련 매출이 감소한 납품 농‧어민과 중소 협력업체들도 규제 폐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이처럼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논란은 관련 당사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지점에 놓여있다 할 것이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영업규제는 사업자의 불공정거래행위 등과 같은 구체적 법 위반사유가 없음에도 영업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침해적 사전규제이다. 법문의 외견상으로는 건전한 유통질서, 상생발전, 근로자의 건강권 등 사회적 목적을 표방하지만, 사업자의 경제활동을 제약하여 경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경제적 규제에 가깝다. 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 헌법 원리에 따르면, 국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은 시장의 자생적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는, 이른바 ‘시장실패’에 대한 처방 혹은 예방으로서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즉, 경제적 규제는 관련 시장의 경쟁관계에 대한 분석과 규제 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유통산업발전법」상 영업규제에 대한 논란이 이토록 커지게 것은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라는 감성적 목적에 가려져 위와 같은 검토와 숙의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대형마트 영업규제의 경제적 효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평가한 다양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직접적 경쟁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이에 따라 영업제한규제로 인한 대형마트의 매출 감소가 전통시장과 지역 중소유통업체의 매출 증대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유통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핵심은 물리적 상품 그 자체가 아닌 유통환경 특성이 가미된 서비스라는 점에서, 전통시장과 중소 소매유통업체들은 대형마트를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사업모델로서의 소매유통업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제품의 수명주기와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도입-성장-성숙-쇠퇴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주기의 속도와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소비자의 선택이다. 과거 대형마트 업태가 소매유통시장의 강자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의 시장은 유통환경의 변화와 함께 온라인쇼핑, 모바일쇼핑 등 새롭게 등장한 유통업태를 주축으로 재편되어 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므로 지금의 시장환경과 경쟁구도 또한 가변적이다. 소매유통 업태의 일 유형에 불과한 대형마트도 위와 같은 수명주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인가구 증가와 함께 소량 고빈도 구매, 온라인 구매 등의 소비패턴 변화로 인해 대형마트 역시 역성장의 위기에 있다고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오랫동안 소매유통시장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전통시장과 소규모 유통업체들이 쇠퇴기에 접어든 것은 대형마트의 등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데 있어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유통산업발전법」상의 영업규제는 전통시장 쇠락의 책임을 대형마트에 전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생발전’의 목적을 내걸고 있지만 일방적 희생과도 같은 영업제한을 통해 대형마트가 어떠한 발전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그러한 영업규제가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에게 직접적 도움이 된다는 실증적 검증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당 규제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유통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꼭 필요하다면, 그것은 ‘경쟁자’의 보호가 아닌 ‘경쟁’의 보호를 위한 방향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쇠퇴의 과정에 있는 유통채널이 혁신을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다시금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에 뛰어 들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전통시장의 디지털 전환, 로컬브랜드 구축, 라이브커머스 연계, 문화 콘텐츠와의 접목, 관광명소화 등을 다각도로 지원해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영업규제와 같이 경쟁자의 발을 묶는 식의 규제는 단기적으로는 고통의 분담을 통해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듯 보이지만 장점에 기초한 경쟁(competition on the merits)을 저해하여 장기적으로 소비자후생은 물론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통시장과 중소 유통업체가 상생의 방도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대상은 대형마트가 아니라 ‘소비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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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