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지켜낸 ‘넛신’의 우승 약속

입력 2022-08-29 14:34
LCK 제공

‘피넛’ 한왕호는 한때 자신에게 구애한 팀마다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우승 트로피를 안겨 우승 청부사로 통했다. 2016년 락스 타이거즈, 2017년 SK텔레콤 T1, 2018년 롱주 게이밍…. 그는 3개 팀의 역사에 별을 새겼다.

잘나가던 청부사는 2019년 폐업했다. 롱주를 떠나 젠지로 향한 한왕호는 당시 입단 소감을 밝히는 인터뷰에서 “젠지가 아직 LCK 우승이 없으므로 이 팀에서 우승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자신만만한 태도로 밝혔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젠지도, 한왕호도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이들은 스프링 시즌 7위, 서머 시즌 6위로 플레이오프조차 구경해보지 못한 채로 1년을 보냈다. 한왕호가 무리수를 둘 때마다 팬들은 ‘ㅇㅅㄴㅅ(역시넛신)’이라며 그를 조롱했다. 시즌이 끝난 뒤 젠지는 그와 작별하고 ‘반지원정대’를 결성했다. 한때 국내 최고의 정글러였던 선수의 전성기는 그렇게 마무리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부진은 일시적이었다. 한왕호는 활동 무대를 옮겨 곧바로 재도약에 성공했다. 이듬해 중국 ‘LoL 프로 리그(LPL)’ LGD 게이밍에 입단한 그는 중위권으로 평가받던 팀을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 진출시켰다. 그는 그곳에서 더 영리하게 동선을 설계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예전의 명성을 되찾은 그는 다시 LCK로 돌아왔고, 2021년 서머 시즌의 MVP로 등극했다.

한왕호는 게임을 주도적으로 설계해나가는 정글러들이 각광받는 중국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과감한 플레이를 시도할 때는 리스크가 있기 마련”이라면서 “나는 LPL을 다녀온 뒤로 리스크를 덜 신경 쓰게 됐다. 그래서 실행으로까지 옮길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연말 스토브리그, 한왕호는 ‘비디디’ 곽보성과의 1대1 트레이드를 통해 젠지로 다시 왔다. 같은 이적생 ‘쵸비’ 정지훈과 그는 여름 내내 환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냈다. 그리고 지난 28일 서머 시즌 결승전에서 T1에 3대 0으로 승리하면서 마침내 2019년에 했던 약속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해결이 가장 오래 걸린 청부(請負)였지만, 가장 화려한 성과를 낸 청부이기도 했다.

세 세트 내내 파괴적인 플레이를 펼친 한왕호는 결승전 MVP로 선정됐다. 백미는 2세트 초반에 선보인 3캠프 갱킹이었다. 그는 세주아니로 상식을 깨는 빠른 미드 갱킹을 성공시켜 상대의 미드 구도를 망가트렸다. 한왕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MVP 수상을 예상치 못했다”며 “2세트의 구도를 비틀고 3세트 때 강타 싸움에서 이겨서 상을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여섯 번째 도전 만에 설움을 푼 미드라이너는 우승 직후 카메라 앞에서 “무관(無冠)과 무관(無關)해져 기쁘다”고 말했다. 늘 유관(有冠)과 유관(有關)했던 정글러는 다른 이유로 기뻐했다. 그는 “젠지 팬들께 2019년도에 입단했을 때 ‘꼭 우승을 안겨드리겠다’고 했다”며 “이번에 (약속을) 지켜서 다행”이라며 비로소 속이 후련하다는 듯 웃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