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지게차를 운행하다 사고를 당하고 1년 뒤 동료 근로자가 같은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공황장애를 갖게 됐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임성민 부장판사는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철강업체 직원인 A씨는 2016년 2월 사업장에서 지게차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쇳물을 녹일 때 생기는 이물질을 지게차로 떼어내는 작업을 하던 중 지게차가 이물질 배출구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고 설상가상으로 지게차 전면부가 전기로에 깔리게 됐다. 운전석 안에 있던 A씨의 부상은 타박상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이후 다시 지게차 운전 업무를 하지 않았다.
사고 1년여 뒤인 2017년 5월 A씨는 동료 근로자가 자신의 사고 때와 동일한 지게차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고 심한 불안감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A씨는 병원에서 ‘적응장애·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는 2020년 1월 동료 근로자가 같은 작업을 하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증상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업무적 요인보다는 개인적 환경 등 업무 외적 요인이 질병 유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재심사 청구도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을 뒤집고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가 회사 상사와 트라우마 관련 면담을 했던 기록, 동료 근로자들이 2016년 사고 당시 A씨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고려해 “A씨의 상병과 업무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비록 A씨가 사고 당시 타박상 정도의 상처만 입고 별다른 산재 처리 없이 업무에 복귀했다 할지라도 그가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면서 “지게차와 관련된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A씨에게 상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는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