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프랑스 덩케르크 철수작전에 관한 영화다. 게리 올드만이 처칠 역할을 했는데, 명연기를 펼쳤다. 이 영화는 처칠의 불굴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기적과도 같은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불가능했음을 보여준다. 이 작전이 실패했다면 영국군과 연합군은 덩케르크에서 몰살을 당했을 것이고, 승리는 독일의 몫이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1940년 5월 27일부터 6월 4일까지 9일간 진행된 작전이다. 군함이 모조리 파괴돼 병력을 철수시킬 배가 없자 650여 척의 민간 선박까지 동원시켜 연합군을 철수시켰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그곳에 고립되어있던 연합군 33만8000명이 떼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철수 작전 성공으로 무사히 돌아온 연합군 병력이 있었기에 1944년에 연합군이 대반격해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처칠을 압박한 건 바로 덩케르크에 고립된 약 35만명에 달하는 연합군의 목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독일과의 협상을 통해 연합군의 목숨을 살리자는 외무부장관 할리팩스의 주장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의회 의원들도 항전보다는 평화협상에 더 마음이 쏠린 상태였다.
그래서 끝까지 항전하자고 주장한 처칠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거듭 고뇌했다. 이런 엄청난 고뇌의 시간을 표현하는 의미에서 이 영화의 제목이 ‘가장 어두운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독일과의 강화 협상을 고민하던 처칠은 하원에 연설하러 갈 때 일부러 지하철을 탔다. 마지막 결정을 앞두고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하철과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하나같이 비굴한 협상보다는 결사항전을 원하고 있었다. 결국, 처칠은 결사항전을 택했다. 처칠이 만약 히틀러와 강화 협상을 통해 쉽게 가려고 했다면 유럽은 독일의 손아귀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처칠의 냉철한 판단과 뚝심이 영국과 유럽을 구한 것이다.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진정한 리더라면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영화였다.
현재 우리는 리더십 부재 시대에 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100일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국민에게 제대로 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닥친 일을 처리하면서도 우왕좌왕한다. 이러니 20%대 지지율이다. 이런 지지율로 산적한 현안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암담하다.
정부가 헤매고 있으면 여당이라도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집권 여당이라는 국민의힘은 어떤가. 내부에서 쌈박질하느라 바쁘다. 직무가 정지된 당대표는 끊임없이 정부와 당을 향해 총질을 하고 있고, 윤핵관이 중심이 되어 출범한 비대위조차 최근에 법원이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가처분을 결정해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정부와 야당을 견제해야 할 야당의 상황은 어떤가. 현재 비대위 상황인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의 실정으로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데 만족하는 것인지 국민에게 희망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당대표를 포함한 지도부를 선출하는 과정에 있음에도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 정치에서 처칠같은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제발 국민에게 짐만은 되지 않기를 바랄 뿐.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