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연례 국제경제 심포지엄 ‘잭슨홀 미팅’에서 한국의 통화정책에 대해 “시장이 원하는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정책 방향에 대한 사전적 안내)를 제시하면서 향후 운용상의 신축성을 확보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27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캔자스시티 연방은행(연은) 주최로 열린 잭슨홀 미팅에 참석,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신흥국 및 소규모 개방경제에 대한 교훈’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공식 의결문에선 정성적 문구만 포함하고, 기자 간담회에서 구체적인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총재는 한은 총재 사상 처음으로 잭슨홀 미팅 세션 발표를 맡았다.
포워드 가이던스란 중앙은행이 향후 경제 상황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미래의 통화정책 방향을 예고하는 시장과의 소통 수단이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발생한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에 도입됐다. 중앙은행은 시장의 소통을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할 수 있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 7월 통화정책 방향 회의를 마친 뒤 공식 의결문에서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전망되는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금리를 당분간 25bp(0.25% 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잭슨홀 미팅에서 “비전통적 정책은 대체로 장기금리를 낮추고 경기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거뒀지만 커뮤니케이션(소통)이 과도하게 단순화되고, 이로 인해 경제주체들은 외부 환경 급변 시 정책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며 “과도한 단순화로 인해 시장이 불확실성을 과소평가하게 되면 중앙은행은 출구전략을 구사하기 어려워져 2013년의 ‘긴축발작’ 같은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흥국이나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대외 불확실성에 의한 영향이 큰 만큼 급격한 경제 여건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가 더 필요하다”며 “출구전략의 유연성을 크게 제약하는 비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가 신흥국의 이상적인 정책수단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장기화되는 시나리오에서는 보다 강력한 금리 정상화 정책을 제안하고, 반대의 경우 완화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정책을 제안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했다면 저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고인플레이션 국면으로 넘어가는 최근의 이행과정에서 더 유연하게 정책대응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신흥국의 경우 선진국 통화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기본과 대안 시나리오를 만들기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 반대 의견도 상당한 게 사실”이라며 “신흥국들은 시나리오 기반의 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 같은 더 정교한 정책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