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침공 6개월째, 독립기념일 행사… 우크라 “함께 걸어준 한국에 감사”

입력 2022-08-28 01:11 수정 2022-08-28 01:12
27일 경기도 안산시 신안산대학교에서 글로벌호프, 프로보노국제협력재단과 우크라이나공동대책위원회 공동주관으로 열린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의 날’에서 참석자들이 전쟁 희생자를 위한 묵념에 이어 우크라이나 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문디아나 비딸리오나(18)양은 지난 6개월간 거처를 두 번이나 옮겼다. 지역만 옮긴 게 아니라 국경을 넘었다. 처음 간 곳이 폴란드 바르샤바였고 한국엔 지난 19일 들어왔다.

비딸리오나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지난 2월 러시아 침공 이후 4개월간 고향인 자포리자를 지키던 그녀였지만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비딸리오나는 “2주 간 방공호에 숨어 있을 때도 어려움은 없었다. 방공호에서 나온 뒤에도 포격 소리는 들렸지만 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며 “그러다 부엌 창을 통해 우리 집 바로 옆에 로켓포가 떨어지는 걸 보고 가족 모두 피란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비딸리오나는 한국에서 8월 24일을 맞이했다. 이날은 러시아가 지난 2월 24일 침공한 지 6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1991년 우크라이나가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고 31번째 맞는 독립기념일이었다.

27일 경기도 안산시 신안산대학교에서 글로벌호프, 프로보노국제협력재단과 우크라이나공동대책위원회 공동주관으로 열린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의 날’에서 한국에 온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OX 퀴즈를 풀고 있다.

비딸리오나는 27일 경기도 안산시 신안산대학교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의 날’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국제개발협력 NGO인 글로벌호프, 프로보노국제협력재단과 우크라이나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주관했다.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독립기념일 행사가 금지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는 전쟁을 피해 한국에 온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모여 함께 고향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저마다 우크라이나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도움을 주는 한국정부와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국살이 9일차인 비딸리오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국에 오고 싶었는데 이렇게 슬픈 이유로 오게 될 줄은 몰랐다”며 “그럼에도 폭격 소리를 듣지 않고 어린 동생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무 다행이다. 오늘 같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하다”고 했다.

지난 19일 한국에 온 문디아나 비딸리오나양이 27일 경기도 안산시 신안산대학교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의 날’에 참석한 가운데 인터뷰하고 있다.

그녀가 한국에 오기까지 여정은 쉽지 않았다. 러시아군의 공격이 심화되자 지난 6월 고모의 가족, 형제 등 10여명이 함께 피란길에 올랐다.

비딸리오나는 “우리가 피란길에 오르고 며칠 뒤 정부는 움직이면 위험하다며 이동 금지령을 내렸다. 그때 움직이지 않았다면 계속 자포리자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4남 2녀 중 셋째인 그녀의 21살 큰 오빠는 피란길에 함께 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는 18세 이상, 60세 이하 남성은 국경을 넘을 수 없다.

그녀의 가족은 자포리자에서 비니차로 이동해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폴란드와 가까운 국경으로 갔다. 이틀 간 대기한 끝에 사흘 만에 국경을 넘었다.

두 달간 폴란드 한인회의 도움으로 숙소를 정하고 한국행을 준비했다. 우크라이나 피란민 중 한국으로 가는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고려인 뿐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고려인, 어머니가 우크라이나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2011년, 2021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이후 고려인인 큰 고모가 형제들을 입양했다. 한국에는 5년 전부터 작은 고모가 살고 있었다.

폴란드 한인회를 통해 고려인 후손이라는 걸 입증할 서류를 한국 대사관에 제출했고 드디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딸리오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믿지 않는 러시아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데 전 세계 사람들이 진실을 전 세계에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게 필요하냐’는 질문에는 “사람마다 필요한 게 다르고 이미 한국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더 원하는 게 있다는 건 욕심”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있을 때 힘들면 기도했다. 한국사람들과 한국교회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해 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 트럼펫 주자이자 승현교회 음악전도사인 마트비옌코 콘스탄틴씨가 27일 경기도 안산시 신안산대학교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의 날’에 참석한 가운데 한국사람들의 도움과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20년 넘게 한국살이를 하고 있는 마트비옌코 콘스탄틴(47)씨도 한국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키이우 국립음악원 출신의 그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 트럼펫 주자이자 부천 승현교회 음악전도사다. 그는 한국에서 악기로 우크라이나 상황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날도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지금 상황이 많이 어려워졌고 국제사회의 도움이 없으면 우리는 죽을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마음에 힘듦이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아프고 힘든 마음을 위로해 주시는 데 감사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어 악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유창한 한국 말로 “힘들 때 함께 기도해 주셨으면 한다”면서 ‘주만 바라볼찌라’를 연주했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 트럼펫 주자이자 승현교회 음악전도사인 마트비옌코 콘스탄틴씨가 27일 경기도 안산시 신안산대학교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의 날’에서 연주하고 있다.

콘스탄틴씨는 지난 6월에도 밀알복지재단이 개최한 콘서트에서 연주했다. 콘서트 후원금은 삶의 터전을 잃은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중에 부속행사도 열렸다.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 재건을 고민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다. 우크라이나에서 사역해 온 김평원 선교사는 최근 보름간의 일정으로 우크라이나 키이우와 부차 등에 다녀온 뒤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이양구 우크라이나 전 대사는 재건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이야기했고 한양대 조병완 명예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넘어 5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가 27일 경기도 안산시 신안산대학교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의 날’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행사 말미엔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포노마렌코 대사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우크라이나를 도와주려고 하는데 그 중 한국의 도움이 크다. 덕분에 한 발, 한 발 승리의 길로 갈 수 있을 듯 하다”면서 “러시아는 72시간이면 전쟁이 끝날 거라고 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버티며 싸우고 있다. 함께 해 주심에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안산=글 사진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