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살인 혐의를 받는 뉴질랜드 한인 영주권자가 중국으로 신병 인도될 가능성이 커졌다. 뉴질랜드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이 한인의 신병 인도 요청을 받고 막바지 법적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이 한인은 13년 전 상하이에서 성매매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키리 앨런 뉴질랜드 법무장관이 중국에서 살인사건 혐의자로 지목된 영주권자 김모(47)씨의 신병 인도 문제를 두고 곧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27일 나왔다. 이날 AP통신은 뉴질랜드 법무부가 김씨 측이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기한 문제점 등에 관해 법률 조언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뉴질랜드 대법원은 지난 4월 김씨의 신병 인도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 장소를 상하이로 하고 공정한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약속이 전제된다는 하에서다.
당시 이 판결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고문 가능성도 있을뿐더러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고, 유죄로 확정되면 과도한 처벌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다수 민주 국가들이 중국에 범죄인 인도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재판부가 다수 선례와 배치되는 결정을 한 것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신병 인도에 필요한 비용 문제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를 중국에 인도하면 외교관을 추가로 보내 그의 처우 등을 살펴봐야 한다. 이에 따라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뉴질랜드 외교부의 해당 문건에 이같은 내용이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교도소에서 10년 이상 복역할 가능성이 있고, 재원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이 커질 수 있다는 취지의 지적으로 해석된다. 뉴질랜드 공관원은 재판 기간 이틀에 한 번씩 김씨를 찾아가서 만나야 하고 이후엔 15일에 한 번씩 찾아가야 한다.
외교부는 김씨를 지켜보기 위해 상하이에 고위급 영사를 추가로 파견할 필요가 있다며 여기에 드는 비용은 첫해에만 37만7000 달러(약 3억1000만 원)가 들 것으로 추산했다.
나나이아 마후타 뉴질랜드 외교장관은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시험 사례인 만큼 중국 당국이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 불공정 재판이나 고문을 가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또 외교부가 김씨의 처우 등을 면밀히 감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고, 중국이 김씨를 공정하게 다루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으로 본다는 견해를 여러 차례 법무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김씨 변호인 토니 엘리스는 “뉴질랜드 정부는 김씨가 중국에서 공정한 처우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감시자를 붙여 놓아도 의뢰인의 처우를 적절하게 지켜보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김씨가 현재 심한 우울증과 작은 뇌종양, 간과 신장 질환을 앓고 있어 중국에 향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클랜드에 사는 김씨는 2009년 상하이에 놀러 갔다가 20세의 성매매 여성인 첸페이윤을 구타하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0년 김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2011년 5월 뉴질랜드 정부에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김씨는 뉴질랜드에서 체포된 뒤 5년간 재판 없이 투옥됐다가 2016년 보석으로 풀려났고, 이후 3년을 전자 감시장치를 부착한 상태로 보냈다.
그는 14세 때부터 뉴질랜드에서 거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뉴질랜드에서 재판도 받지 않고 투옥된 경우로는 김씨가 최장기에 속한다. 김씨는 전 여자 친구의 소행이라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