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잡아주실 분!”…‘능력자’, 어디까지 사봤니?

입력 2022-08-26 00:03 수정 2022-08-26 00:03
국민일보 DB

“집에 엄지손가락만 바퀴벌레가 있어요.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베란다에서 찾아서 잡아주실 분 계신가요?”

“설거지해주실 분 구합니다. ㅠㅠ 가격 제시해주세요.”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이른바 ‘구인 게시물’이다. 최근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선 ‘사람을 구한다’는 게시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중고 거래가 확대되면서 단순한 상품 거래를 넘어 개인의 ‘사소한’ 능력까지 사고팔 수 있게 됐다.

한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 벌레를 대신 잡거나 설거지를 대신 해줄 사람 등 사소한 '능력 구매'가 이어지고 있다. 당근마켓 캡처

이들이 사고파는 능력의 범위도 매우 넓다. ‘수학 문제 풀어줄 사람’ ‘번역 능력자’ ‘원고 대신 읽어줄 사람’ 같은 약간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부터 ‘벌레 잡아 줄 사람’ ‘전구 갈아줄 사람’ 같은 간단한 일까지 있다. 그야말로 상상 초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국민일보 인턴기자들이 직접 이들의 능력을 구매해봤다.

‘수강 신청’부터 ‘예약 전화’까지…가격도 천차만별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구인·구직 게시판. 이곳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능력자를 구한다’는 게시물이 올라온다. ‘벌레 대신 잡아줄 사람’은 기본이고 ‘영어 원문 번역’부터 ‘그림 그려줄 사람’까지 다양한 ‘능력 구매자’들이 넘쳐난다.

어느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구인·구직 게시판'. 다양한 능력을 사고 파는 게시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집에 들어온 나방을 잡아달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심지어 ‘대학교 행정실에 전화를 대신 해줄 사람’을 찾는 이도 있었다. 이 구매자는 “수강신청 관련해서 물어보고 싶은데 못 알아듣겠다”며 행정실에 문의해본 뒤 자신에게 다시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사례금은 3000원이었다.

다양한 능력만큼 이들이 제시하는 금액도 천차만별이다. 어느 구매자는 ‘대학교 수강신청을 대신 해 줄 사람’을 찾으면서 성공 시 무려 5만원의 사례금을 주겠다고 걸었다. 반면 ‘치과에 예약 전화 한 통만 대신해주실 분’을 찾는 이의 사례금은 200원이었다.

소개한 사례들은 글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대여섯 개의 댓글이 달리며 ‘판매 완료’ 됐다.

이처럼 개인 간 능력 거래를 해본 사람들은 ‘편리함’을 장점으로 꼽았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벌레 퇴치를 해달라는 게시물을 올렸던 대학생 박수민(25·가명)씨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을 바로 구할 수 있어서 매우 편하다”며 “특별히 어떤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판매자와 연락할 수 있어서 (능력 거래를) 자주 이용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개인 간 능력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배경에 ‘1인 가구 증가’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2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산업화 시대에는 가족들이 서로 돕고 살았다”며 “그런데 점점 도시의 익명성이 높아지고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1인 가구 구성원 혼자 가정생활을 꾸려나가며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특정) 서비스를 타인에게 의뢰해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접 ‘포토샵 능력자’ 구해보니…이런 점이 좋네

다양한 상품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인턴기자들도 직접 능력자를 찾아 나서 보기로 했다. 마침 최근에 찍은 사진 중 수정이 필요한 사진이 있어 ‘포토샵’ 능력을 사기로 했다.

기자가 직접 '포토샵 능력자'에게 의뢰 후 받은 사진. 요구했던 빌딩이 완벽히 사라진 모습이다. 왼쪽의 사진이 오른쪽 사진으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20분이 채 되지 않는다.

오전 10시 59분, 온라인 커뮤니티 구인 관련 게시판에 ‘포토샵 해주실 분! 하늘 사진에 빌딩 좀 지워주세요’ 라는 글을 올렸다. 커뮤니티 내 포토샵 거래 시세를 확인한 뒤 사례금은 5000원으로 제시했다. 기자는 하늘 사진 속에 함께 담긴 빌딩을 지워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2개의 댓글이 달렸다. 기자도 곧바로 한 댓글 작성자에게 대댓글로 사진 수정을 요청했다.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는 댓글로 사진이 오고 가면 화질이 깨진다며 오픈 채팅방을 이용하자고 했다. 능력자는 오픈 채팅방에서 기자의 사진 수정 요구사항을 재차 확인한 뒤 선입금 후 사진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먹튀’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례금 5000원을 입금하자 불과 20분 만에 예상보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받았다. 직접 해보니 이런 식의 능력 거래가 왜 성행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작고 사소한 일이라 전문가에게 맡기기는 애매하지만 내 힘으론 할 수 없는 일을 소정의 대가를 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게다가 거래 과정은 무척 빠르고 간단했다.

기자는 포토샵 능력자 A씨와 짧은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A씨는 사진 관련 업종에서 일한 적도, 따로 학원에 다니며 전문적인 과정을 배운 적도 없다고 했다. 그에게 포토샵은 그저 “초등학생 때부터 취미로 해왔다”는 그만의 능력이었다.

현재 직장을 그만두고 포토샵 프리랜서로 전향했다는 A씨는 “사진 보정, 합성 쪽으로 많이 하고 요즘에는 결혼 사진, 바디프로필 수정도 한다”며 “커뮤니티에서 포토샵 이용자들을 많이 본다”고 했다.

능력 거래, '먹튀' 당하면 어떻게 하죠?

이 같은 ‘능력 거래’는 주로 온라인상에서 비대면으로 이뤄지다 보니 의뢰를 해놓고 돈을 지급하지 않거나 결과물을 받은 뒤 사라지는 ‘먹튀’ 사례도 종종 있다. 실제 A씨 역시 “몇 번 먹튀를 겪고 난 뒤부터는 아예 선입금으로 거래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포토샵 능력자를 구하는 게시물을 달자 금새 두명의 지원자가 나타났다. 이중 자신의 포토샵 경력을 첨부한 지원자에게 의뢰를 맡겼다.

이 때문에 ‘능력 거래’ 이용자들 사이에서 인증은 필수로 여겨진다. A씨도 본인이 이제껏 해온 작업 사진을 댓글로 첨부해 본인의 포토샵 능력을 인증했다. 말주변 있는 사람을 구하며 대신 통화해 달라던 이용자들 상당수도 통화 내역 인증을 요구했다.

혹여나 거래 과정에서 ‘먹튀’ 피해를 입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소액일지라도 신고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국민일보에 “소액 거래 사기일지라도 재수 없다고 넘어가지 말라”며 “간단한 피해 진술서만으로도 충분히 신고가 가능하니 반드시 거래를 한 해당 웹사이트나 경찰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피해자의 신고가 누적되면 나중에 가해자를 검거하고 처벌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거래가 이뤄질 때는 익명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강력범죄로 전이되는 예도 있다”며 “개인 간의 거래에서는 사전에 충분히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전화나 신분 확인 등을 통해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영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서민철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