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 K는 잠을 자다가 깨서 놀란 듯 식은 땀을 흘리며 자지러지게 울고 달래도 진정이 되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또 낮에는 짜증을 심하게 부리면서 엄마에게 요구가 많다. 반항이 심해 사소한 일로도 엄마를 탓하며, 충돌하고, 엄마를 이기려고만 하니 엄마도 참다가 감정이 폭발한다.
증상을 중심으로 진단을 해보자면 만 5세까지는 중추신경계에서 수면-각성 주기가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미성숙한 단계에 있으므로 야경증을 진단할 수 있다. 어른과 논쟁하기, 어른의 요구나 규칙을 무시하거나 거절하기, 자신의 실수나 잘못된 행동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타인에 의해 기분이 상하거나 쉽게 신경질 내고, 화내고 원망하는 등의 행동이 있으니 적대적 반항장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상학적 진단이 아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한 가지 심리적인 원인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K는 이런 증상이 생기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부모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딸이었다.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쌍둥이 언니는 매우 까다롭고 분리불안도 심해 엄마에게 껌처럼 붙어 있으려 하고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K는 언니에 비해 순하고 잘 먹고, 떼 한번 쓰는 일 없이 말도 잘 들었다. 놀아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혼자서도 잘 놀았다. 자연스럽게 언니는 엄마가 주로 보살피고, K는 도와주시는 베이비시터가 돌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언니는 사교성도 좋고 활발하며, 순종적이고 공부도 잘한다. K는 까칠하다보니 친구들과도 원만히 지내지 못하고 공부도 잘하지 못하니 집밖에서는 매우 위축되어 있다. 엄마도 직접 돌보아 온 언니가 성격도 활발하고 하니 애정이 많이 가고 애틋한 건 사실이라고 했다. 반면 K는 부족해 보이는 면이 싫고 반항까지 심하니 돌보아 주지 못해 미안하기는 하나 좀처럼 수용하기가 어렵다.
K와 같이 순하고 무던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들이 있다. 일명 ‘강아지형’ 아이다. 강아지가 어떤가? 주인의 기분을 잘 맞춰 주고 말도 잘 듣고 순종적이다. 이 유형의 아이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은 낮고 보상 의존성은 높아 칭찬과 인정 욕구는 다소 높다. 그러니 산만하지 않고 차분하며, 고집도 적어 양육하기 수월한 아이들이다. 트러블을 만들지 않고 평화롭게 지낸다. K도 어릴 때는 쌍둥이 언니에게 양보도 잘하여,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 너무 고마웠고 칭찬을 많이 들었다. 칭찬에 잘 반응하는 K는 더욱 양보하고 요구를 하지 않게 된다. 쌍둥이를 키우느라 힘에 부친 부모는 아무래도 계속 매달리며, 관심을 요구하는 언니와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하게 되었으며, K에게는 관심이 부족해졌다. 아무리 기질적으로 순한 아이라 하더라도 이런 경우 양육자와 불안정한 애착이 형성되기 쉽다.
이럴 때 K처럼 순했던 아이들은 칭찬받기 위해 눈치를 보고 지나치게 착하게 행동하는 아이가 되거나, 욕구 불만에 가득차 반항적인 아이가 되기도 한다. 또 애착의 문제는 생존에 필수적인 잠, 먹는 것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애착’이라는 한 뿌리에서 적대적 반항장애와 야경증이 비롯된 거다.
부모는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두 아이에 대한 감정을 들여다보고, 순간순간 드는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였다. 반항하는 K에게 들었던 원망감이나 분노와 더불어 미안함과 안쓰러운 감정을 알아차리면서 K와의 힘겨루기를 그만두었다. 부모에 대한 분노의 표현을 사랑에 대한 갈급함으로 새롭게 이름 붙였다. K는 언니 없이 엄마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데이트도 하면서 관심을 온전히 받아보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서서히 변해갔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