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전사자 유족, 北김정은 상대 소송 이겨

입력 2022-08-24 17:33 수정 2022-08-24 17:37
제2연평해전 승전 20주년 기념식이 열린 지난 6월 29일 오후 경기도 서해 해상에서 유가족이 유도탄고속함 조천형함을 타고 해상 헌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故) 한상국 상사의 유족과 참전용사들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다만 실제 배상이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86단독(판사 김성근)은 한 상사의 배우자 김한나씨 등 8명이 북한을 상대로 총 1억6000만원을 배상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원고들에게 1인당 2000만원과 2002년 6월 29일부터 연 5%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라고 밝혔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현행법상 국내 법원에서 판결할 수 있다고 본 결과다. 재판부는 “헌법 및 국내법상 반국가단체인 북한은 민사소송법에서 정한 비법인 사단이므로, 사건 불법행위에 대해 국내법원에 재판권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 상사의 부인 등은 2020년 10월 “북한의 불법행위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북한과 김 위원장에게 공시송달로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알리고 판결을 선고했다.

공시송달이란 재판 당사자의 주소지 등 소재를 알 수 없는 경우 ‘법원에서 재판서류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게시하는 제도다. 게시 2주가 지나면 서류가 당사자에게 배달된 것으로 간주해 피고인 없이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

한 상사는 제2연평해전 당시 침몰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정의 조타장이었다.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군 경비정 2척이 우리 해군 참수리 357호 고속정을 기습 공격하면서 발발했다. 우리 측에선 한 상사와 함께 참수리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과 조천형 상사, 황도현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다쳤다.

김씨와 참전용사들이 재판에서 승소했으나, 실제 이들에게 배상금이 지급될 지는 알 수 없다. 같은 취지의 판결이 선고됐으나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한 강제 집행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202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억류돼 강제노역했던 탈북 국군포로들이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 승소했으나 추심 절차가 불발된 바 있다.

당시 피해자들은 국내에 있는 북한 재산에 대해 채권 압류 및 추심 명령까지 받아냈다. 강제집행의 1차 대상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법원에 공탁해 놓은 북한 저작권료였다. 그러나 경문협은 지급을 거부하면서 “북한이 아닌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등 저작물 저작자들에게 줄 돈”이라고 주장했다. 법원도 “북한이 경문협에 대해 이 사건 피압류 채권을 갖는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면서 경문협 손을 들어주면서 추심은 불발됐다.

경문협에 대한 추심이 여의치 않을 경우 강제 집행을 하려면 국내에 있는 다른 북한 재산을 찾아야 한다. 앞서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송환돼 숨진 미국인 오토 웜비어의 부모는 미국 법원에서 약 6100억원의 손해배상금 판결을 받았다. 이후 유족들은 미국에 압류돼 있던 북한 선박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은 바 있다.

한편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의 아들도 지난 4월 중앙지법에 북한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