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파보 예르비 “한국에 특별한 유대감… 전쟁 반대”

입력 2022-08-24 12:36
올해 9월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12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을 이끌고 내한하는 지휘자 파보 예르비. (c)Kaupo-Kikkas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휘자 중 한 명인 파보 예르비가 올해 두 차례 한국을 찾는다. 9월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12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함께다. 그동안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는 여러 차례 내한 공연을 펼쳤지만,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는 처음이다.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9월 3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통영국제음악당(4일), 경기아트센터(5일)에서 관객과 만난다.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공연을 앞두고 공연 기획사 빈체로를 통해 예르비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에스토니아의 젊은 연주자들은 연주 실력과는 별개로 타국의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젊은 연주자들에게 전 세계의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인맥을 넓힐 좋은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지휘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프로페셔널한 방법으로 연주자들을 서로 소개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가 훨씬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예르비가 2011년 자신의 고향인 에스토니아에서 직접 창단해 애정을 쏟고 있는 오케스트라다. 예르비가 지휘자인 그의 아버지 네메 예르비, 크리스티안 예르비와 함께 2011년 여름 시작한 페르누 뮤직 페스티벌의 상주 오케스트라다. 축제 기간 전 세계 음악도들을 위한 예르비 아카데미도 열린다.

“페르누 뮤직 페스티벌,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예르비 뮤직 아카데미,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에스토니아 음악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하나의 단체로 계획적으로 설계되어 관련된 모든 활동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분리될 수 있는 단체이기도 하죠.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한국에 방문하는 것이 바로 그런 예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모토로 내건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에스토니아 연주자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온 연주자들로 구성돼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 선발과 운영에 대해 예르비는 “나는 전 세계를 돌며 지휘할 때 잠재력 있는 연주자들을 살펴본다.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 연주자가 바로 내가 찾는 대상이다. 이런 연주자를 찾으면 내가 먼저 다가가서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해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벌써 창단한 지 12년이 됐는데, 처음에 학생이었던 연주자가 이제는 악장이나 수석 연주자로 활동한다”면서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지금도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고 동시에 젊은 활기로 가득 차 있다. 이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이 가장 핵심인 만큼 ‘그들의(단원들의)’ 오케스트라다. 이것은 공동체 의식과 에너지에 큰 차이를 만든다”고 답했다.

이번 내한 공연의 협연자들 역시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출신으로 현재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연주자들이다. 에스토니안 국립 심포니 악장으로 활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트린 루벨과 202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 3위를 기록한 첼리스트 마르셀 요하네스 키츠가 무대에 올라 브람스 이중 협주곡을 연주한다. 예르비는 “두 연주자는 우리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성장한 동문 같은 존재로 앞으로 에스토니아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존재다. 그래서 두 연주자를 이번 한국 공연에서 꼭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르비는 9월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이후 60번째 생일이 들어있는 12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다시 내한한다. 예르비가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거쳐 갔지만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은 2004년부터 지금까지 음악감독을 맡고 있을 만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예르비는 “생일이 있는 특별한 시기에 내게 특별한 두 오케스트라와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한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한국 관객들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한편 북유럽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는 1940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에 의해 점령당한 아픔을 가진 나라다. 예르비 가족은 원래 에스토니아 출신이지만 구소련 지배를 받던 1980년 미국으로 망명했었다. 이후 구소련이 해체되고 에스토니아가 독립한 뒤 예르비 가족은 에스토니아 음악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6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그에게 쓰라린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저는 전쟁과 폭력에 반대합니다. 전쟁이 우리의 국경 근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인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이 에스토니아를 점령했던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철의 장벽이 무너지고 에스토니아가 독립을 되찾은 것도 고작 30년 전의 일입니다. 전쟁은 개인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사건이고 개개인은 피해자를 돕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폭력과 침략을 실패로 만들어야 합니다. 전쟁은 야만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