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여유, 한 말씀 좀”… 文, 말없이 ‘싱긋’ [영상]

입력 2022-08-23 04:51 수정 2022-08-23 10:25
문재인 전 대통령이 22일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방문객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경호구역 확대로 사저 인근이 조용해지자 문 전 대통령은 1시간 가량 마을 나들이에 나섰다. YTN 화면 캡처

대통령 경호처가 22일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의 경호구역을 반경 300m로 넓힌 가운데 문 전 대통령이 사저를 나서 오래간만에 조용한 일상을 누린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YTN은 이날 문 전 대통령이 양산 평산마을 사저를 벗어나 1시간가량 마을 나들이에 나서는 장면을 영상에 담았다. 문 전 대통령이 귀향한 이후 가장 긴 시간 동안 마을을 둘러본 날이었다.

YTN 화면 캡처

오후 3시반쯤 욕설과 고성을 퍼붓던 보수 성향의 시위자들이 물러나자 문 전 대통령은 사저를 나왔다. 문 전 대통령은 비서진과 경호원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을 천천히 거닐었다. 문 전 대통령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평소 즐겨 입는 갈옷 반소매 셔츠와 통이 넓은 반바지 차림이었다. 김정숙 여사는 산책에 동행하지 않았다.

취재진이 “100일 만에 여유인데 한 말씀 잠깐만 해달라”고 요청하자 문 전 대통령은 잠시 서서 답변하는 대신 싱긋 웃으면서 손 인사로 대신했다.

YTN 화면 캡처

문 전 대통령은 이웃을 방문해 20분 정도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또 집회 관리에 나선 경찰을 격려하고 이웃들과 웃으며 일상을 즐겼다. 마을을 찾은 방문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날 대통령 경호처는 문 전 대통령 경호를 강화하기 위해 0시부터 경호구역을 ‘기존 사저 울타리’에서 ‘울타리부터 최장 300m’로 확장했다. 평산마을 입구 쪽 청수골 산장(음식점)부터 평산마을 뒤쪽 지산마을 마을버스 종점(만남의 광장)까지 경호구역에 새로 포함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 사저 경호 강화 첫날인 22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에서 300m 떨어진 곳에 반입금지 품목과 관련 근거 등이 적힌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경호구역이 시작되는 청수골 산장 앞 도로에는 철제 펜스가 설치됐다. 아울러 ‘여기는 경호구역입니다. 교통관리 및 질서유지에 적극 협조 부탁드립니다’라는 알림판이 세워졌다. 경호처 직원들과 경찰은 출입 차량을 세워 일일이 검문한 뒤 평산마을에 들여보냈다. 방문객에게는 행선지와 방문 목적을 물은 뒤 들여보냈고, 가방이 있으면 소지품 검사도 했다.

기존에 이뤄지던 시위가 경호구역 내에서 금지된 건 아니다. 시위자들은 신고를 할 경우 경호구역 내에서도 집회·시위를 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경호구역에서 질서유지, 교통관리, 검문·검색, 출입 통제, 위험물 탐지·안전조치 등 위해(危害) 방지에 필요한 안전 활동을 할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 사저 경호 강화 첫날인 22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에서 300여m 떨어진 곳. 일반 차량이 진입하는 것과 달리 확성기 부착한 차량이 정차해 있다. 이 차는 확성기 부착으로 마을 내 진입이 불가 됐다. 연합뉴스

이에 따라 대통령 경호처와 경찰은 22일 0시부터 화약 등 인화성 물질, 총포·도검류, 폭발물, 기타 위해 도구 등의 반입을 금지했다. 확성기와 스피커를 부착한 차량도 마을 진입을 차단했다. 실제로 이날 지붕에 대형 스피커를 단 승합차가 평산마을에 들어가려다 경호구역 입구에서 막힌 일도 있었다.

문 전 대통령 사저 경호구역이 확장되면서 평산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게 얼마만의 평화냐”는 환영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여러 주민들은 “진작부터 이렇게 했으면 좋지 않았느냐”며 오랜만에 맞이한 평온을 만끽했다.

이번 경호구역 확장 조치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다. 앞서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에서 시위하던 한 60대 남성이 지난 16일 경호처 직원 등에게 커터칼을 휘두른 혐의로 구속되는 일이 불거지자 윤 대통령이 김진표 국회의장의 요청을 받고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