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도주하는 사건이 이달 연달아 발생하면서 제도의 실효성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자발찌는 재범 위험을 낮추는 보조적인 수단이라며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2일 국민일보 취재 결과 울산지법은 지난 6월 28일 전자발찌를 훼손한 혐의로 A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강간상해죄로 2019년부터 10년간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았으나 지난해 자신의 집에서 전자발찌를 훼손해 검거됐다. 그는 지난해 9월 1일부터 열흘간 왼쪽 발목에 부착된 전자발찌를 과도와 사포를 사용해 절단했다. 다행히 추가 범행 전 검거됐으나 보호관찰소는 A씨가 전자발찌 훼손을 시도한 후 열흘 동안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법무부는 전자발찌 제도 도입 후 그간 6번이나 재질을 개선했지만 전자발찌 절단을 막지 못했다. A씨 사건을 포함해 지난해에만 19개의 전자발찌가 절단됐다. 이달 들어서도 전국에서 절단 사례는 이어졌다. 지난 15일과 17일에는 인천에서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도주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지난 7일에도 대구에서 40대 남성이 현금 등을 훔친 뒤 전자발찌를 자르고 달아났다가 붙잡혔다.
전자발찌 절단 사례가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우선 관리 인력 부족 문제가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자발찌 대상자는 지난해 기준 1만827명이지만 담당 인력은 338명에 불과했다. 보호관찰관 1인당 17.7명을 맡고 있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자발찌는 보조 수단이지만 채워만 놓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원격으로 관리해 부착 대상자가 통화에만 응하면 사실상 이동이 자유로운 것도 허점으로 꼽힌다. 지난달 전자발찌를 끊고 도망쳤다 하루 만에 붙잡힌 50대 B씨의 경우 4년 전 ‘외출 제한 대상자’로 분류됐지만 대리운전 기사 등으로 근무했다. 당시 그는 전자발찌를 끊고 일본으로 도주했는데, 보호관찰관 전화에 “추적장치를 고객이 들고 내렸다”며 감시망을 피했다.
부착 대상자가 거주지를 옮겨도 제대로 인수인계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2018년 전자발찌를 찬 30대 C씨는 성폭행을 저지른 후 24일 동안 서울 시내를 활보했다. 범행 전 그는 수도권에 거주했음에도 주민등록상 주소에 따라 충북 청주에서 관리 중이었다. 새 거주지에서 인력을 이유로 관리를 거부하면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관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자발찌가 아무리 강해져도 도주를 마음먹은 범죄자를 막을 순 없다”며 “‘끊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전자발찌 외에도 추가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자 특성을 세분화해 밀착 감시 집단을 만들고, 귀가 시간 위반이나 위치 이탈 등에 대해서는 재구금 등의 추가 형벌을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민지 성윤수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