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기정진(1798~1879)은 그해 7월, ‘육조소(六條疏)’라 불리는 첫 번째 ‘병인소(丙寅疏)’를 올렸다. 외침에 대한 방비책으로 여섯 가지를 제시하고, 민족주체성의 확립을 주장한 것으로 당시의 쇄국정책과 보조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이 기정진의 병인소는 후에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기정진의 식견을 높이 평가하고, 그해 6월, 사헌부집의, 7월에는 동부승지, 8월에는 호조참의, 10월에는 가선대부의 품계와 함께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등을 제수하였으나, 기정진은 모두 사양하면서 두 번째 병인소를 올렸다. 당시의 국가적 폐습을 준엄하게 비판하고, 지도층인 사대부에게 청렴결백한 기풍이 없음을 우려해 삼무사(三無私) 정책을 간하는 상소였다.
삼무사(三無私)는 ‘예기(禮記)’에 나오는 경구로, ‘하늘은 사심 없이 가리지 않고 세상을 덮어주고(天無私覆), 땅은 사심 없이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실어주며(地無私載), 해와 달은 사심 없이 가리지 않고 만물을 비춰준다(日月無私照)’는 것이다. ‘하늘, 땅, 해와 달처럼 사심 없이 공평하게 천하를 위해 봉사하라’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만약, 고종이 기정진의 충언을 적극적으로 실천했다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삼무사는 특히 현재의 고위 공직자들이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문구이다. 하늘과 땅이 마음에 드는 것만 덮거나 실어주지 않듯이, 해와 달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비추거나 더 많이 비추지 않고 두루 공평하게 비추듯이 고위 공직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사심 없이 공평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사사로움에 좌우될 여지가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자신의 이익은 물론 지연, 학연, 사회적 인연, 정파 등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에 이끌려 공평함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피해는 일개 개인이나 집단의 파멸에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구한말 조선처럼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도 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현재까지 윤석열 정부의 모습은 삼무사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을 보자.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아내의 나토 정상회의 사적 수행, 윤 대통령 6촌과 극우 유튜버 누나의 특채, 오랜 지인의 아들 6급·9급 행정요원 채용까지 공평은 없고 사심(私心)만 넘친다. 게다가 정부 주요 자리는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검찰과 서울대 출신이 차지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 바쳐 직언하는 소신 있는 강직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오로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아첨하고 모함하는 ‘꾼’들만 들끓고 있는 것 같다. 이러고도 입만 열면 ‘공정’을 외치니 한숨만 절로 나온다.
이제부터라도 윤석열 정부는 ‘삼무사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사심 정치로 자신은 물론 국가와 국민을 망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아직은 늦지 않았으나, 국민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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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