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송파구 한 대형마트 채소 코너 앞. 장을 보던 김모(51)씨는 이리저리 가격만 살피며 서성였다. 시금치 한 단에 붙은 가격표는 7980원이었다. 오이 2개는 3400원, 상추 100g은 2500원이었다. 채소 코너에는 ‘산지 기상악화로 품위 저하가 있을 수 있다’는 문구를 담은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김씨는 “가격이 믿기지 않는다. 싱싱하기라도 하면 눈 딱 감고 사겠는데, 곧 시들시들하게 생긴 걸 비싼 값에 사려니 속이 쓰린다”고 말했다.
채소 가격이 치솟고 있다. 작황 부진과 비용 상승으로 여름 내내 비싼 가격을 보였는데, 추석이 다가오면서 다시 들썩이고 있다. 최근 기록적 폭우까지 겹치면서 인상 요인이 추가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4일 기준으로 농작물 1457㏊가 침수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일부 농경지가 유실된 데다, 폭염과 폭우 영향으로 채소 품질은 평년보다 좋지 않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9일 시금치 1㎏의 전국 평균 소매가격은 3만4105원에 이르렀다. 지난해 추석 즈음에도 비싼 시금치 가격이 입에 자주 오르내렸는데, 1년 전(2만6610원)보다 28.2%나 뛰었다. 평년 가격(1만7538원)과 비교하면 약 2배 가까이 비싸졌다.
오이 가격도 급등했다. 오이(가시계통) 10개의 전국 평균 소매가격은 1만8133원으로 지난해(9668원)보다 2배가량 올랐다. 적상추는 100g당 2071원으로 한 달 전(2207원)보다 다소 내렸지만, 1년 전(1662원)과 비교하면 24.6% 상승했다.
채소 뿐만 아니다. 과일 값도 오름세다. 선물용과 차례용품으로 쓰이는 사과(후지)는 10개에 3만787원이나 된다. 1년 전(3만1675원)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평년 가격(2만3328원) 대비 32.0%가량 비싸다. 배(신고) 10개는 4만2193원으로 1년 전(5만1333원)보다 낮게 형성돼 있다. 다만 추석이 다가오면서 값이 더 오를 수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에 채소류 가격은 전년 대비 평균 25.9%나 뛰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6.3% 상승해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그나마 대형마트 업계에서 최근 최저가 가격경쟁을 하면서 추석 물가가 크게 요동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는 “명절을 대비해 좋은 물건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연초부터 산지를 다양화하고 가격과 품질 관리를 했다. 작황 부진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겠으나 가격 대응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