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던 공정이 돌아오고,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이 돌아오는 날로 만들겠습니다.”
‘공정’과 ‘상식’을 열망하던 20대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이 같은 수락 연설에 호응했다. 17대 대선 이후 보수정당 후보 중 윤 후보에게 20대는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내줬다.
하지만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 청년층의 마음은 차갑게 돌아섰다. 국민일보가 만난 20대 100명 중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을 뽑았다는 이들은 48명이었는데 이 중 31명이 지지 철회 의사를 밝혔다. 청년들이 윤석열정부에 가장 실망한 지점은 공정과 상식이었다. 100명 중 84명이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고 입을 모았다. 윤석열정부가 ‘공정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4명에 불과했다.
국민일보 인턴기자들은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대면, 전화, 서면 등을 통해 청년 100명에게 윤석열정부 출범 100일에 대한 평가를 자유 답변 형식으로 들었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라 지역, 성별을 고려해 선정했다. 윤석열정부를 향한 실망과 배신감을 감추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윤석열의 공정과 상식은 무엇인가” 되물었다
윤석열정부의 출발 성적표는 예상보다 더 초라했다.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 윤석열은 없었다. “윤석열정부의 공정과 상식이 기대에 걸맞냐”는 질문에 박지인씨(24·여)는 “윤석열정부가 정의하는 공정과 상식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다”고 했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나” “취임사에서 보여줬던 멋진 말과 달리 정부는 그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아직도 공정과 상식을 슬로건으로 내세운다면 정말 오만한 사람들이다” 등 강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정부와 대통령실을 둘러싼 인사 논란과 김건희 여사의 부적절한 행보가 불공정과 비상식의 주요 장면으로 언급됐다. 100명 중 26명은 인사 논란을, 21명은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을 지적했다.
대학생 A씨는 “윤 대통령이 정말 공정했다면 아빠 찬스를 쓴 장관 지명자는 애당초 후보로 지명되지 않았을 것이고, 김 여사의 석박사 학위는 취소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논란을 다루는 윤석열정부의 태도가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A씨는 “채용에서의 공정은 20대 청년들에게 아주 민감한 문제”라며 “공정을 대놓고 깨뜨린 행동이었지만,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서모씨는 “뻔뻔하다. 단 한 차례도 사과가 없었다”며 “사고 자체가 불공정으로 가득한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와 서씨는 대선 당시 윤 대통령에게 표를 준 20대 여성들이었지만, 흔들린 ‘尹의 공정’에 그만 등을 돌렸다.
윤석열정부가 ‘공정하다’고 답한 응답자 4명 중 3명은 문재인정부와 비교해 언급했다. 이들은 “전 정부와 비교하면 훨씬 공정하다”고 평가했다. 수원에 거주하는 이효중씨(25·남)는 김 여사의 학위 관련 논란을 짚으며 “학교가 결정한 것인데, 이를 공정과 상식의 문제로 보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고 했다.
불공정, 국정 운영 실패, 이준석에 지지율 무너졌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윤석열정부의 핵심 가치가 휘청이면서 민심도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응답자 100명 중 80명은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20명만이 윤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을 뽑은 48명 중 31명이 지지를 철회했다. 다른 후보를 뽑은 52명 중 윤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이는 1명에 그쳤다.
공정과 상식은 20대가 윤 대통령을 ‘손절’하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20대의 지지율이 하락하게 된 요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34명은 어긋난 ‘공정’과 ‘상식’을 짚었다. 특히 이중 절반에 가까운 16명은 ‘불공정’한 윤석열정부의 내각 인사와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을 문제 삼았다.
서울 강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B씨(26·여)는 “대통령실 사적 채용 및 인사 논란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공정한 일자리에 관심도가 높은 20대 지지층이 많이 이탈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이민희씨(21·여)는 “전 정권의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 인사를 비판했지만, 정작 윤 대통령은 검찰 편중 인사를 했다”며 “대선 당시 이재명 의원의 음주운전 전력을 문제 삼았지만, 음주운전을 했던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다. 도대체 윤 대통령의 공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18명 중 16명은 윤 대통령이 100일 동안 해온 소통방식과 언행을 ‘비상식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행보를 ‘남 탓’ ‘내로남불’ ‘독선’ ‘오만’ ‘일방적 소통’ 등으로 정의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한모(29·남)씨와 인천에 거주하는 대학생 서한길씨(가명·23·남)는 윤 대통령의 ‘남 탓’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한씨는 “대통령은 국민이 갈등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화합하게 해야 하는 사람”이라며 “반복되는 내로남불과 남 탓 정치는 대통령으로서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서씨 역시 “잘못도, 실수도 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윤 대통령은 사과 대신 남 탓을 했고, 비판에는 답변을 회피하는 일방적 소통을 해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국정 운영 실패’ 역시 윤 대통령 지지율에 발목을 잡았다. 윤 대통령과 정부가 무능하다고 응답한 이는 21명, 윤석열정부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20대는 9명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모든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정 운영의 책임자인 대통령의 자질 부족이 국정 운영 실패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항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송준수씨(27·남)는 윤석열정부의 민생경제 대책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대통령이 자질이 없다 보니, 정부가 고물가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대책이 없다”고 쓴소리했다. 취업준비생 주모씨(23·남)는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못 읽어 (국가 정책 기조의)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등 국민이 반발하는 정책만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원생 C씨(29·남)는 “지난주 폭우로 침수가 된 모습을 보고도, 집으로 퇴근해 전화로 지시를 내리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냐”며 “시민이 죽은 현장에서 대통령은 부적절한 발언을 했고, 대통령실은 이 모습을 홍보물로 활용한 모습에 분노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와의 갈등도 20대 지지율 하락에 한몫했다. 24명이 이 전 대표 문제를 콕 집어 말했다. 이 전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도 이 전 대표와의 갈등은 문제라는 시각을 보였다. 이번 조사는 지난 13일 열린 이 전 대표의 기자회견 이전에 이뤄져 기자회견 및 이후 상황에 대한 평가는 담기지 않은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D씨(26·남)는 지난 대선 이 전 대표를 믿고 윤 대통령에게 표를 행사했다고 한다. 그는 “여당 소속임에도 대통령에게도 직언할 줄 아는, 그동안 볼 수 없던 정치인을 토사구팽했다”며 “나와 같이 이 전 대표를 지지하는 이들은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전모씨(22·남)는 “군사작전 하듯이 이 전 대표를 몰아냈고 내부총질 문자가 공개돼 이대남들이 분노했다”고 전했다.
평소 이 대표에 비판적인 입장이라는 정모씨(26·남)는 “지지 여부를 떠나 2030 정치의 상징이 된 이 전 대표를 내치는 행위가 청년 세대를 무시한다는 메시지로 전달됐다”며 이 전 대표와의 갈등을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평가했다.
공약 미이행을 문제 삼은 이들은 8명이었다. 구리에 거주하는 대학생 E씨는 “이대남을 위한 공약을 지키지 못해 이대남이 떠났다”고 했다.
반면 윤 대통령 지지층에서는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언론과 야당의 탓으로 돌렸다. 경주 출신의 백모씨(29·남)는 “임기 초반이라 실수할 수도 있고, 전 정부의 실책이 너무 큰 상황”이라며 “언론과 야당의 공세에 무능한 정부라고 낙인찍힌 것”이라고 진단했다.
100명 중 39명, “기대? 없다”
윤 대통령을 바라보는 20대의 시각은 매우 회의적이다. “윤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학생 F씨는 “기대요? 없는데 그래도 굳이 꼽자면, 모르겠어요. 없어요”라고 답했다. F씨 외에도 100명 중 39명이 이 질문에 답변을 머뭇거리며 ‘기대가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취임 이후 행보를 이유로 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공정’이 부메랑이 돼 20대의 기대감을 꺾었다. 대학생 장모씨(25·남)는 “(윤 대통령은) 공정이 원툴(One Tool)이었는데 이제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민성씨도 “’공정’ 하나만 봤는데 이제 그거마저 잃었으니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실망감을 내비쳤다. 이들은 모두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을 두고 윤 대통령의 공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처음부터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학생 정다원씨(25·남)는 “처음부터 아무런 기대조차 하지 않았고, 그저 걱정뿐이었으나 취임 후 현실은 걱정보다도 잔혹했다”고 평했다. 직장인 G씨(26·여)는 “취임 이전부터 기대하는 바가 없었지만, 취임 이후 행보는 더욱 실망스럽다”고 했다.
尹, 20대 마음 잡으려면…“이것 해결해야”
돌아선 20대의 마음을 다시 잡을 돌파구는 무엇일까. 20대 청년들은 ‘경제 문제 해결’ ‘인적 쇄신’ ‘성찰과 반성’ ‘일자리 문제’ 등의 순으로 ‘윤 정부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을 꼽았다.
응답자 중 24명은 ‘경제’를 시급한 국가 문제로 인식했다. 응답자 상당수가 물가 안정이 시급하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C씨는 “고물가에 경제위기인 상황에서 확실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흥에 사는 대학생 김채현씨(22·여)는 “물가는 민심과 직결된다”며 “물가에 시름시름 앓아가는 시민들이 많다”고 호소했다.
뒤이어 장관 인사와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 등 ‘인사 문제’를 시급한 현안으로 꼽았다. 응답자 17명의 답변 중 윤 대통령의 미흡한 국정 운영을 유능한 인사 등용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럿 나왔다.
전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이효진씨(가명·27·여)는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만 봐도 도덕적으로나 능력으로나 봤을 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며 “대통령이 인사권에 큰 영향을 가진 만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의 “대통령은 처음이라”던 발언을 언급하며 유능하고 경험 많은 인사들의 등용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국정 운영이나 정책에 대한 사항이 아닌 윤 대통령의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응답자가 13명으로 집계됐다. 앞서 윤석열정부에 기대하는 바에서도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이가 20명에 달했다. 민심에 힘입어 국정 운영을 하기 위해선 대통령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하며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천에 거주하는 대학생 박모씨(22·남)는 “일단 반성과 사과가 먼저라고 생각한다”며 “그래야지 국민도 믿음을 갖고 대통령을 바라볼 것”이라고 했다. 대학생 안성은씨(22·여)는 “정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며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국가에서 대통령이 정책을 국민의 지지에 힘입어 추진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응답자 중 6명은 ‘일자리 부족’ 문제에 주목했다. 부천에 사는 취업준비생 조형찬씨(가명·23·남)는 “나처럼 취업해야 하는 20대는 많은데 일자리가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조씨와 같이 일자리 부족 문제를 지적한 취업준비생 최예진씨(24·여)는 일자리 수 증가만이 아닌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양질의 일자리가 없으면 저출산, 결혼 등 사회적 문제가 더 심화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수해와 코로나 재확산을 의식한 듯 재난 대응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한 응답자가 4명이었다. 파주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수현씨(가명·24·여)는 “코로나, 풍수해 등 상황에서 재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그전까지는 대통령이 형식적 액션이라도 취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전에 거주하는 대학생 오영현씨(가명·23·남)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문제로 지적하며 “무책임한 코로나 대응이 지속하고 있는데 빨리 보건복지부 장관을 뽑아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치닫는 미·중 갈등 등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를 우려한 응답자(3명)들도 있었다.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태현씨(27·남)는 “세계 3차대전이 걱정될 만큼 국제정세가 위태로운데 윤 대통령이 확실한 안보관을 갖고 잘 풀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남에 거주하는 대학생 박다희씨(22·여)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국익을 챙기는, 좋은 처세를 보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찬규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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