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감나무 마을에서

입력 2022-08-18 11:34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여주인공이 감을 따고 있다.

‘인구절벽 시대의 한국교회’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경북 군위의 한 마을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깡촌’으로 불릴만한 이 시골 초입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세련된 건물과 영어로 적힌 카페가 들어서 있던 것입니다.

젊은이들과 어린이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늙은 동네라고 해서 찾아왔는데, 마을 초입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물론 외지인들이지만, ‘그나마 다행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저마다 SNS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물좋고 경치좋은 곳에는 사람들이 몰려오는가 봅니다. 덕분에 잠자는 듯 조용한 시골 마을엔 활기가 도는 것 같았습니다.

배용한 군위 대율교회 목사가 마을 한구운데 있는 대청마루에서 한 할머니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고무신과 지팡이, 노인용 유모차 등이 눈에 띈다.

제가 들렀던 군위군 부계면 일대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배경이 된 동네입니다. 주인공인 여배우 김태리가 어느 가을날 감을 따던 장면을 찍은 곳이라고 하더군요. 곳곳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고, 유서 깊은 고택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000년을 이어온 마을답게 맑은 공기와 녹음이 짙은 주변 경관들, 말 그대로 저절로 ‘힐링’이 되는 동네더군요.

취재차 만난 배용한(군위대율교회) 목사님의 교회에 들렀습니다. 마당에 잔디가 쫙 깔려 있었습니다.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멋진 야외 무대도 눈에 띄었습니다. 올해로 창립 93주년을 맞는 교회 예배당에 들어가보니, 독특한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길다란 장의자 사이 듬성 듬성 방석과 돋보기도 놓여 있고, 이런저런 개인 용품도 보였습니다. “아, 저마다 지정석이 있어요. 시골교회 특징이라고 할까요 하하하” 배 목사님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오래된 교회, 오래된 성도들의 ‘내집 같은 교회’의 단면을 마주했다고 할까요.

배용한 군위 대율교회 목사가 교회 앞마당에서 올해로 창립 93주년을 맞이한 교회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배 목사님은 매주 한 차례, 사모님이 만든 카스텔라와 시원한 생수를 들고 공공 근로를 하시는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갑니다. 직접 동행하면서 지켜보니 이렇게 정겨운 풍경이 없습니다. “목사님, 왜 자꾸 이러능교. 미안하구로~” “어르신, 날도 더운데 그늘에서 설렁설렁 하이소.”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서먹함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배 목사님은 지난해 암투병을 겪었습니다. 몸을 회복해 가면서 삶의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 머무는 목회자가 될 것이냐, 마을 속으로 들어간 목회자가 될 것이냐.’ 배 목사님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나 저 역시 배 목사님과 같은 마음을 품으면 좋겠습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