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회원국과 유럽의회는 2026년 6월까지 상장기업 이사회 구성원의 최소 40%는 여성을 비롯한 ‘과소 대표된 성’으로 채우기로 지난 6월 합의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사외이사 중 40%, 전체 이사 가운데 33%를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EU 주요 상장사의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은 30%를 넘었다. 하지만 헝가리 에스토니아 키프로스 등은 이 비율이 10%에 미치지 못한다. 여전히 국가 간 격차가 크다.
한국에서도 지난 5일부터 개정 ‘자본시장법’을 시행하면서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법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이사회를 특정 성별로만 구성하지 못하게 한다. 이에 여러 기업이 여성이사를 선임하고 나섰다. 다만 갈 길이 멀다. 특히 여성인력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른바 ‘중후장대 산업’에서 여성이사 구하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조선 빅3’는 올해 첫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사인 HD현대는 지난달에 이지수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첫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다. 대우조선해양도 최경규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를 첫 여성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앞서 삼성중공업은 2020년 조현욱 더조은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를 여성 사외이사로 영입했었다. 방산업체인 현대로템과 한화시스템도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처음으로 선임했다.
이와 달리 여성이사를 구하지 못한 기업도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경우 사내이사 1명,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의 성별은 모두 남성이다. 상근임원 35명 가운데 여성은 전무하다. 두산밥캣,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두산에너빌리티 등의 이사회도 남성으로만 이뤄져 있다. KAI 관계자는 “항공우주 분야의 여성 전문가를 계속 찾고 있지만, 항공우주나 방위산업이라는 특성상 여성 전문가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여성이사 확보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으로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 172곳 가운데 30곳(17.4%)의 사외이사 전원은 남성이었다. 자산 2조원 미만 기업 중 여성 사외이사가 1명이라도 있는 기업은 8.2%(168곳)에 불과했다.
재계에서는 해당 업종의 전문성을 갖춘 여성인력을 찾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여기에다 법을 어겨도 처벌 조항이 없어 사실상 강제성이 없다는 점도 기업들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거세지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사회 다양성 확보는 지배구조 개선과 연결된다. 외부 투자 유치, 사업 추진, 계약 체결 등에서 ESG 경영은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송재형 전국경제인연합회 기획팀장은 “다양한 생각과 자원이 모여야 시너지가 날 수 있는데, 이른바 중후장대 산업뿐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서 여성 전문가 찾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여성 전문가 풀이 충분히 마련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기업이 자율적으로 여성 전문가를 구하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