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거주 발달장애 가족 참변…기록적 폭우에 주거약자 비상

입력 2022-08-09 12:38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 일가가 참변을 당하면서 주가 약자들의 안전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전국적으로 30만 가구 이상이 반지하에 거주하는 가운데 기존 반지하 가구에 대한 규제 장치가 없어 이번 폭우와 같은 재난 상황 시 비극이 되풀이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쯤 신림동에 거주하던 A씨(47) 일가족이 폭우에 쏟아진 빗물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집안에 갇혀 사망했다. 발달장애인이었던 A씨의 언니(48)와 A씨의 딸(13)이 참변을 당했다. 당시 이들이 거주하던 빌라 앞 도로가 주저앉으면서 빗물이 급격히 밀려든 것으로 전해졌다. 옆집 주민들도 길 위로 조금 튀어나온 방범창을 뜯어내고 탈출했다. 이어 A씨 일가족을 구하기 위해 방범창을 뜯어냈지만 시간이 오래 소요됐다. 신고를 받은 경찰도 워낙 많은 신고가 몰리면서 2시간여 뒤에 도착해 소방당국과 함께 배수 작업을 했으나 이들은 이미 숨진 뒤였다.

A씨가 거주하던 반지하주택은 전국적으로 30만 가구 이상이며, 9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돼있다. 2020년 3월 국회입법조사처의 ‘반지하 주거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반지하 주택에 전국 37만9605가구가 거주 중이다. 서울에 22만2706가구를 비롯해 수도권에만 36만4483가구(96.1%)가 밀집해있다.

거주민을 살펴보면 기초생활수급가구가 29.4%나 됐고 장애인 가구와 소득 하위 가구가 각각 15.5%를 차지했다. 청년가구(12.3%)와 고령자·노인·7년 이하 신혼부부 가구도 각각 9.1%였다. 월세 가구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 58.9%였고, 전세 가구가 25.0%를 차지했다. 사회적 약자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반지하 주택이 새로 늘어나진 않고 있지만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반지하 주택에 대해선 별도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곳에 거주하는 분들이 적정한 주거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입임대주택이나 전세임대주택 등을 저렴하게 공급해 반지하 거주민이 옮겨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매입임대주택은 물량이 적고 장시간이 소요된다. 전셋값을 지원해주는 전세임대주택의 경우 현재 전셋값이 너무 오른 탓에 현재의 호당 단가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운 상태다.

김 연구원은 “침수 피해가 있을 때마다 반지하 거주민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며 “보증금과 월세 등을 마련하기 어려우므로 결국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긴급지원주택도 확대해야 하지만 자치구별로 한두 채 정도 있는 게 전부”라며 “반지하 거주민이 대피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덧붙였다.

반지하 주택을 포함한 임대 주택에 대한 주거 품질 규제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임대하는 거처에 대한 품질 규제가 없다. 열악한 쪽방도 임대인이 50만원 받겠다고 하면 받을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주거 품질을 규제하는 방식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 사례처럼 장애인 가구의 경우에는 주거 상향 외에 장애인의 활동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가 강동·서대문·송파구에 모두 43호를 공급한 장애인지원주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활동지원사를 통해 장애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공공임대 주택인 만큼 재난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안전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오전 A씨가 살던 신림동 빌라를 방문해 사고 원인을 점검하고 침수 피해 상황을 점검했다. 인근 주민은 오 시장에게 “여기 문이 (수압 때문에) 안 열려서 열 수가 없었다. 119는 너무 늦게 오고 전화도 안 받고 해서 발만 동동 굴렀다”고 호소했다. 오 시장은 “강북 쪽 여유 있는 구청에 양수기를 비가 많이 오는 자치구로 긴급 지원해달라고 오전 9시에 통보했다”며 “문제는 오늘도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까 다 주긴 어려울 거다. 시청에 돌아가면 다시 한번 얘기를 전달하겠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 거주민에 대한 안전 대책을 보완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현재 반지하 주택은 원칙적으로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다만 기존부터 거주하시는 분들에 대해선 추가로 확인이 필요해 관련 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단 피해 상황 복구가 중요한 만큼 일단 긴급구호제도를 활용해 이재민에 구호금을 지급했다”고 덧붙였다.

강준구 김이현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