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용의 출현’에서 나대용 장군을 연기한 배우 박지환은 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김한민 감독에게 배역을 제안받고 나서 나대용 장군의 산소와 임진왜란 때 성들, 충무사와 소충사를 찾았다. 한산도에 들어가 ‘역할에 대해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뽈락구이와 소주를 마셨다”고 그는 당시의 막막함을 떠올렸다.
박지환은 “한산도에 머물던 어느날 새벽 바닷가를 걷는데 눈앞에서 전쟁하는 모습이 펄쳐졌다. 지옥도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마치 지옥도처럼 끔찍하고 무서웠다”며 “이 바다가 당시엔 모두 핏물이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돋았다.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를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 같다”고 돌이켰다.
‘한산’에서 나대용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을 개발하고, 전라 좌수사 이순신 장군을 도와 한산도대첩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는 인물이다.
박지환은 “나대용 장군이 과학자로서 거북선을 만든 것도, 김한민 감독이 영화적 상상력을 끌어온 것도 대단하지만 제게는 다른 감정이 필요했다”면서 “당시 원주 사는 친구의 권유로 법천사지의 지광국사탑비를 보러 가게 됐는데 비석을 받치고 있는 것이 거북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자 애썼던 간절함과 기도같은 게 느껴졌고, 그런 에너지가 몸에 조금씩 채워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처음 배역을 제안받았을 때 박지환은 자신이 당연히 왜군 역일 것으로 짐작했다. 그는 “왜 저를 선택하셨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주 야비한 역을 맡았던 영화 ‘봉오동 전투’ 시사회 날 김 감독이 제게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하셨다”면서 “‘한산’이라는 영화에서 거북선을 제작한 나대용 장군 역을 맡기려 하신다기에 ‘왜 나한테 그 역을 줄까’ 속으로 생각했다. 김 감독은 ‘봉오동 전투’를 보니 이 역을 줘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두려웠다. ‘기분이 좋다’고 말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박지환은 “하루에 두세 명 씩 영화를 본 지인들이 전화한다. 박지환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평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다”면서 “어제 손석구 배우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영화를 봐 버렸다.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와 기운이 담겨있어 지금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 거북선 등장할 때 사람들이 박수를 쳐서 정신을 못차렸다. 모든 배우들을 존경하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는 소감을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막상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본인의 연기보다는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한 경외감이 앞섰다. 박지환은 “제 연기는 잘 보이지 않고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대의를 가진 분들을 보고 너무 보잘 것 없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다”며 “스스로에 대해 용기 있다고,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저라는 사람이 작게만 느껴졌다”는 소감을 말했다.
영화를 통해선 오히려 동료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했다. 그는 “왜장 와키자카를 연기하는 변요한 배우가 어느 순간 무시무시해 보였다. 배우로서 성장하고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박해일 선배님은 절제와 냉정함, 조용함을 보여줬다. 인간은 담으면 분출하고 싶어하기 마련인데, 그걸 어떻게 녹여서 간직하고 계실까 대단하게 느껴졌다. 눈빛을 통해 너울대고 출렁대는 에너지를 느꼈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나대용 장군에게 “이번 싸움에선 거북선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신을 촬영하던 날이 그에겐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박지환은 “아침에 눈을 뜨는데 몸이 이미 떨리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 ‘디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며 “먼저 촬영하려고 준비하시던 박해일 선배님이 제 눈을 보시더니 ‘얘 지금 다 채워졌어요, 지환이부터 갑시다’ 하셨다. 박해일 선배님과 대화하는 장면까지 찍고 나서 감독님이 아무 말씀이 없으셨는데, 다른 데 가서 울고 계셨다. ‘연기를 보고 당시 인물들의 감정이 상상돼 찡하셨다’고 하더라”고 이야기했다.
올해 배우 박지환의 연기를 이야기하면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빼놓을 수 없다. 드라마에서 박지환은 ‘현이 아방’ 인권 역을 맡았다. 그는 “노 작가님의 글이 너무 좋았다. 그 분의 작품을 할 수 있다는 행복감이 컸고, 촬영 현장은 즐거웠다”고 말했다.
박지환은 “인권 역에 대한 나름의 준비는 무절제하게 먹기, 밤에 잠드는 시간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정하지 않기, 촬영 전에 머리 감지 않기 등이었다”며 “준비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난다. 말끔하게 있으면서 더러운 척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여기저기 긁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배도 조금 나와야 할 것 같고, 바지 입었을 때의 모양 등 모든 게 자연스럽길 바랐다. 디테일을 준비했다기보다 그냥 막 지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2022년이 박지환에게 남다른 해인 것은 분명하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와 ‘범죄도시2’에 이어 ‘한산’까지 흥행에 성공하면서 그는 조금씩 인기를 체감하고 있다. 광고 섭외도 들어오고. 이전에 비해 다양한 역할에 대한 제안도 많이 들어온다.
박지환은 “잘 돌아다니지 않고 휴대전화도 잘 들여다보지 않지만 밖에 나가면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신다”며 “광고도 찍게 해주시고 대본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백번 천번을 물으셔도 감사한 마음 외엔 없다. ‘이 사랑을 어떻게 다시 돌려드리지’ 감사한 마음 뿐”이라고 겸손함을 나타냈다.
그는 “들뜨지 말고 한해를 보내자고, 그냥 지나가는 많은 해 중 하나인 2022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일이 있어도 애써 모른척하고 무던하게 넘기려 하는 편”이라며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잊지말고 감사하되 절대 즐기지는 말자’고 스스로 채찍질한다. 그런 자만은 연기하는 데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조선의 영웅을 연기한 박지환의 영웅은 누굴까. 그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라고 답했다. 박지환은 “제가 아무리 철없는 질문을 해도 진심으로 답해주셨다”며 “한 번은 ‘청춘이 사라지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쭤봤더니 ‘이 바보야,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지. 이제는 삶이 만져져. 생각했던 것을 할 수 있고, 그려왔던 걸 그릴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