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으로 시작한 번호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보이스피싱 전화를 010으로 시작하는 국내 번호로 바꿔준 30대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그는 태블릿PC의 ‘다른 기기에서 전화·문자하기’(CMC) 기능을 활용해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지법 제5형사단독(부장판사 권민오)은 전기통신사업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36)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A씨는 지난 3월 중순쯤부터 5월 4일까지 타인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 유심 18개를 총 18대의 휴대전화 단말기에 삽입한 뒤 CMC 기능을 작동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유심과 연결된 휴대전화번호로 발신할 수 있도록 통신 기능을 설정한 것이다.
CMC는 사용자 편의를 위해 태블릿PC로도 스마트폰과 연동해 전화할 수 있도록 한 기능이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중국을 비롯해 국내 수사기관의 추적이 어려운 해외에서 태블릿PC로 전화해도 국내 번호인 ‘010’으로 시작하는 정상적인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 것처럼 속일 수 있다.
사람들이 국제 전화번호나 인터넷 광고 전화는 잘 안 받지만, 일반 휴대전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잘 받는다는 심리를 악용한 것이다.
A씨는 지인으로부터 CMC 기능을 작동시킨 뒤 인증번호를 알려주면 휴대전화 1대당 5만원씩 주는 업무가 있다는 제안을 받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범행에 이용된다는 것을 알면서 여러 휴대전화 단말기로 통신을 매개해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피해자들에게 연락하도록 한 점, 범행을 반성하는 점 등을 종합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