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이 장애인 만나 노래하면 벌어지는 일···‘희노사, 희망을 노래하다’

입력 2022-08-03 16:42 수정 2022-08-03 16:44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 단원들이 지난해 9월 전북 정읍시 연지아트홀에서 열린 제18회 장애인과 함께하는 열린음악회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문성하 목사 제공

IMF 시절 사업실패로 거리에 나앉았던 30대 청년은 함께 노숙하던 이들을 만나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생의 키를 돌렸다. 24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장애인 예술인들과 전국을 누비며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희노사)’의 단장이자 정읍선교교회를 이끄는 문성하(56) 목사 이야기다.

“20년 동안 900회 넘게 무대에 섰으니까 곧 1000회째 공연을 준비해야 겠네요. 단장이라기보다는 짐꾼이자 기도꾼이자 운전기사 정도의 역할이랄까요. 하하.”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문 목사의 살가운 웃음소리 이면엔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위기와 위기 속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의 만남을 계획한 하나님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버무려져 있었다. 그는 청년 시절을 “무늬만 크리스천으로 살았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사업실패로 생각지도 못한 노숙 생활을 해야 했던 그에게 다른 노숙인들과의 만남은 타인에게 시선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정읍시에 노숙인 쉼터 확충을 건의하고 노숙인의 자활을 위해 필요한 게 뭔지 함께 고민하며 용기를 북돋워 줬다.

노숙인들과 찬양하며 삶을 나누던 어느 날 발달장애를 가진 노숙인 청년이 혼잣말처럼 전한 “드럼을 쳐보고 싶다”는 얘기가 희노사의 출발점이 됐다. 중고 드럼 세트를 구해 청년에게 선물하고 문 목사는 합주를 위해 학원을 다니며 건반을 배웠다. 두 사람의 합주에 통기타 치는 노숙인, 노래하고 싶어하던 18세 언어장애 청소년이 더해져 밴드가 구성됐다.

팀 이름을 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노래하다 희망을 만났고 그렇게 만난 희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담겼다. 그렇게 2002년 첫 걸음을 뗀 희노사의 20년 여정은 ‘장애인과 함께 하는 열린음악회 출범’ ‘찾아가는 장애인 문화프로그램’ ‘해외문화교류 독일 공연’ 등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3명의 보컬, 퓨전 난타팀, 음향팀까지 16명의 스태프가 함께 하는 베테랑 밴드로 성장했다.

8년 전부터는 지역 내 장애인 어린이들을 초청해 여름성경학교도 열고 있다. 2017년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하는 ‘신나는 예술여행’, 한국장애인개발원이 후원하는 장애인식 개선 프로그램 주관 단체로 선정돼 활동 범위가 전국으로 확대됐다.

문 목사는 “단원들이 올 여름에만 전국 각지에서 20여 차례 공연을 펼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무대 위 장애인들을 긍휼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예술인으로 바라보는 토양이 마련돼 신나게 공연을 준비한다”고 덧붙였다.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한숨을 고른 문 목사가 10년 전 기억을 꺼내놨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지역 유지 한 분이 있었어요. 아이가 자폐성 장애인이었죠. 돈은 많은데 장애아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술을 마시고 가정폭력을 일삼던 분이었어요. 어느 날 지인 초대로 우리 공연을 보러 왔는데 공연 후에 연락이 왔어요. 삶을 반성하게 됐다고. 교회 다니면서 앞으로 다른 삶을 살겠다고요.”

문 목사는 희노사의 무대가 시작되기 전 상영되는 영상을 보여줬다. 영상 속 단원들의 인터뷰에선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용기를 얻을 만한 고백이 흘렀다.

“까맣게 보였던 삶에 용기가 생겼어요.”(싱어 송장열) “행복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니까.”(신디사이저 윤수진) “공연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서요.”(베이스 지병호)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