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집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국 아줌마가 “너희들 한국 아이들이구나. 언제 이민 왔니?”라고 “너 고등학교 수능고사 성적이 나빠서 이민 왔구나”라고 했다.
그 여학생은 한국 아줌마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집에 돌아가 자기가 원하지 않은 이민을 왜 왔느냐,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부모님을 졸라대서 온 식구가 함께 통곡하며 울었다고 한다.
이것은 같은 또래 여학생을 둔 엄마들의 얘기다.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들로 인해 고심했던 이민사의 씁쓸한 실화다. 그 어머니 역시 이민 사회에서 이런저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자신이 받은 그 상처가 나쁜 씨앗이 되어 상대편의 가슴을 헤집어 놓는 습관이 길들여졌을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말의 씨앗이다. 말은 떨어진 그곳에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생명력을 가진 것이다. 나는 나의 일터에서 수많은 고객과 다양한 대화를 나누면서 지낸다. 우리의 입으로 무심히 내뱉는 말은 각 사람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고 전달한다.
때로는 직접적인 음성이 아닌 몸짓과 표정, 눈빛에서도 강한 감정과 생각은 전달된다. 사람의 말속에는 그 사람의 정신세계와 삶의 수준과 품성이 나타난다. 말은 행동 이상의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때때로 말은 칼보다 더 큰 힘이 있다고 한다. 성서에서는 말은 심지어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고 할 만큼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제 머리 힘드실 텐데 잘 부탁드립니다. 제 얼굴은 화장해도 별로 예뻐 보이지 않거든요. 전폭적으로 믿고 맡깁니다. 제 친구를 아름답게 바꾸어 놓으셨던데요. 원장님께 정말 감탄했답니다.” “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꾸며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와 대조되는 말도 있다. “저 TV에 나온 것 보셨지요? 자주 나왔어요. 화면을 통해 한 번이라도 보셨으면 얘기하기가 쉬울 텐데요, 어떻게 잘하실 수 있겠어요?” 처음 대하는 경우라도 단 몇 마디의 말을 통해 그 사람을 알게 된다. 말은 곧 각자의 수준과 품위를 대변하는 그릇이다. 혹은 고귀하게 혹은 천박하게 그 사람을 웅변한다.
더 좋은 의미로는 말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남성들보다 말이 많은 우리네 여성들의 수다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이 사회가 따뜻하고 윤택한 것은 여성들의 긍정적이고 재치 있는 언어가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름다운 위로와 덕담과 유머가 풍부한 수다라면 그러한 수다는 작은 사회인 가정에서와 공동체에서 오랜 후까지도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여운을 남긴다. 반대로 날카롭고 쓰디쓴 익모초 같은 말은 상대의 영혼까지도 병들게 하는 마력이 내포된 말도 있다.
나는 가끔 내 입을 통해 나간 말들을 생각해 본다, 그 어휘들을 곱씹어 보며 상대의 입장에 서보게 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일과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게 된다. 내 입을 통해 나간 수많은 말 중에 내가 누굴 비방한 말은 없었는지. 또는 내 이기심 때문에 상대를 폄훼하고 비판하여 상처를 안겨준 일은 정녕 없었는지.
성경에서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곧 온전한 자라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온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입을 통해 흘러나온 말은 바다에 큰 배를 움직이는 키와 같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두 글자와 감사라는 두 글자가 우리 혀에 올려있다면 이보다 더 강한 무기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삶이 다할 때까지 사랑은 우리를 빛나게 하는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가족에게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훈계를 빙자하고 권면과 조언이라고 내뱉은 말, 지난날로 족하다. 상처받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지난날을 ‘실수 전문가’로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사랑의 말을 하는 전문가로 거듭나자. 우리에겐 영생의 창고에 가득한 사랑의 말이 바닷물처럼 풍성한 성서가 있다. 이제부터 U턴하자. 캡슐처럼 먹고 사는 언어를 길들이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나자.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스위스 국제기능올림픽 한국대표(1968), 세계 미스유니버스 대회 미용 담당(1980), 미스월드유니버시티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