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의 30대후반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할 의사가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끝내 숨진 사건과 관련,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이 사건 관련 국회에서도 보건복지부에 진상조사 요구가 진행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병원 측은 환자 발생 당시 수술(개두술)할 의사가 휴가 등으로 인해 부재한 상황이었고 뇌출혈에 대한 중재적 시술(코일 색전술)을 시행했으나 출혈이 워낙 커서 서울대병원으로 전원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 답변과 함께 “응급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하겠다”고 했다.
간호사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진상 규명과 함께 의사 수 부족 문제를 거론하며 정부에 의사 증원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의료계 내부적으로는 이 보다 근본적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3일 성명서를 내고 “이번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망한 간호사의 사인이 뇌출혈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현재 국내 뇌출혈 치료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흔히 뇌출혈이라고 하면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발생 기전이나 생긴 위치에 따라서 종류가 다양하다. 뇌출혈은 크게 외상성과 비외상성으로 나뉘고 외상성은 경막하출혈이나 뇌내출혈, 지주막하 출혈 등 다친 위치나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번 아산병원 간호사처럼 비외상성으로 발생하는 뇌출혈은 자발성 뇌출혈과 뇌지주막하출혈이 흔하고 뇌지주막하출혈의 주 원인이 뇌동맥류 파열이다. 뇌동맥류는 뇌혈관이 꽈리처럼 부풀어 올라 결국에는 터지는 응급 질환으로 ‘뇌 속의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뇌동맥류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두통 등 전조 증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파열 전에 뇌동맥류 진단을 못할 수도 있고 두통이 발생하면 뇌동맥류 파열 초기가 많아 빠른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반면 동맥류가 파열되기 전에 발견하면 중재적 시술을 할 수도 있고 수술할 수도 있다.
중재적 시술은 ‘코일링(coiling)’이라고 하는 비침습적 치료법이다. 주로 허벅지의 대퇴동맥을 통해서 가느다란 관을 삽입하고 이 관을 뇌로 연결해 뇌동맥류가 있는 공간에 백금으로 된 얇은 철사를 감아 넣은 후 그 부위에 혈전(피떡)이 차게 만들어서 동맥류 파열을 막는 방법이다. 머리를 열지 않고 하는 치료법으로 최근 많이 시행되고 있다. 신경과나 영상의학과 의사들이 뇌영상을 보면서 주로 시행한다.
하지만 아산병원 뇌출혈 간호사의 경우 뇌출혈 범위가 커서 머리를 열고 하는 신경외과의 개두 수술이 필요했다. 소위 ‘클리핑(clipping)’이라고 말하는 ‘뇌동맥류 클립 결찰술’인데, 부풀어 튀어나온 동맥류 자체를 묶어버리는 방법으로 코일링 시술에 실패한 사람들이 주로 하게 된다.
문제는 신경외과 의사라도 세부 전공이 달라 모두 뇌출혈 수술을 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아산병원 같은 초대형 대학병원에도 이 수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의사가 단 2명 뿐이었다(다른 빅5 병원도 2~3명 수준). 공교롭게도 해당 간호사의 뇌출혈 발생 당시 당직 콜이 가능했던 의료진은 코일 색전술을 하는 의사였으며 클리핑 수술 의사는 둘 다 병원 내에 있지 않았다(1명은 휴일(일요일)이라 지방에 체재, 1명은 1주일 해외 휴가 중).
병원의사협의회는 이에 대해 “코일링 시술법이 발전되기 전에는 뇌지주막하출혈에 대한 치료 방법이 클리핑밖에 없었고 신경외과 의사들 상당수가 이 수술을 배웠으나 이후 비침습적인 코일링 시술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또 “클리핑 수술에 비해 코일링 시술이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에 도움된다”며 “외국의 경우 클리핑은 신경외과 영역에서 아주 고난이도 수술이라 수가(진료 서비스 대가)가 매우 높은데 우리나라는 전혀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수술 자체도 어렵지만 환자들의 예후도 좋지 않은 데다가 수가마저 보장되지 않으니 자연적으로 클리핑 자체를 신경외과 의사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얘기다.
협의회 관계자는 “국내 신경외과 의사는 인구 대비 적은 편이 아니지만 상당수의 신경외과 의사들이 돈 안되고 힘든 뇌출혈을 외면하고 돈 되는 척추나 암(뇌종양)수술 분야로 많이 진출하거나 뇌출혈 분야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클리핑 보다는 중재적 시술인 코일링 쪽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라고 말했다. 아산병원도 이런 이유로 클리핑 수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의사를 충분히 두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국내 최고 대학병원이 필수의료인 뇌출혈 대응 체계에 있어 대체 수술 자원에 구멍을 드러낸 점은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병원 관계자도 “그 점에 대해선 할말이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응급대응시스템을 철저히 점검해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병원의사협의회는 나아가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핵심 문제는 흉부외과나 외과, 산부인과, 내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 및 의료 인력 부족 문제와 원인 및 해결책이 같다고 할 수 있다. 현재도 배출되는 수많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외면하는 이유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며 “필수의료 분야가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저수가 체계를 개선하고 왜곡된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에 대책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지역별 뇌혈관질환 응급체계가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모색하고 인력 확보와 장비 지원 등 방안, 필수의료 분야를 시작으로 저수가 체계 개선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의사들의 자발적 필수의료 참여를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