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출간 김훈 “젊었을 때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 안중근의 청춘 묘사하려고 했다”

입력 2022-08-03 14:54 수정 2022-08-03 15:37
김훈 작가가 3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자신의 새 장편소설 '하얼빈' 출간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이 소설은 제가 젊었을 때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입니다.”

3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김훈(74)의 새 장편소설 ‘하얼빈’ 출간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작가는 이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김훈은 지난해 몸이 아팠고, 올 봄에 회복되었다. 병을 통과하면서 안중근 소설을 더이상 미루어 둘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를 때렸다고 한다. 김훈은 “1월 1일부터 쓰기 시작해 6월에 끝났습니다. 놀랍게 빨리 끝낸 것이죠. 완성도보다도, 덜 만족하더라도, 빨리 끝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애초의 구상을 많이 줄여버린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 시절 안중근 심문 조서를 읽고 나서 말 못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인간의 사상이란 매우 무질서하고 혼잡한 것이겠지만 혁명에 나서는 몸가짐은 이렇게 가벼운 것이구나, 발딱 일어서는 것이구나, 이것이 혁명의 추동력이고, 삶의 격정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그는 “안중근 심문 조서와 이순신 ‘난중일기’가 그 시절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 책이 결국 제 생애를 지배한 것이죠. 그래서 책이라는 게 인간의 생을 지배할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가끔 생각합니다”라고 얘기했다.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칼의 노래’는 김훈의 대표작이다.

‘하얼빈’은 두만강 끝 러시아령 연추에 머물던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하얼빈을 향해 떠나는 1909년 10월 19일부터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사살한 26일까지 1주일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그려낸다.

김훈은 “제 소설에서 안중근 형성기는 완전히 빠져 있어요. ‘단지동맹’ 같은 사건도 안 다뤘고. 안중근의 의병투쟁도 소략하게 다루고 있습니다”라며 “안중근은 의병투쟁을 하다가 바로 투쟁 노선을 바꿨죠. 의병투쟁은 너무나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의병투쟁에서 의혈투쟁으로 전환하는 대목에서 저의 소설은 시작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소설에 서두름의 자취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면서도 “어쨌든 내가 공을 들여서 쓴 것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중근에 대한 소설과 르포, 보고서, 연구서가 엄청 많아요. 안중근의 민족주의, 영웅성에 한결같이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제 소설에도 물론 그런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안중근의 청춘과 영혼, 생명력을 소설로 묘사하려는 것이 저의 소망이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김훈은 “소설을 쓰면서 가장 신바람 나고 행복했던 순간은 안중근하고 우덕순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만나서 얘기하는 장면”이라고 했다.

“열흘 후 이토 히로부미가 온다는 데 죽이러 가자, 그래 가자, 그랬어요. 서른 살 먹은 이 두 젊은이들은 이 일을 왜 해야 되느냐, 대의명분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총알이 얼마나 있느냐, 거사 자금이 얼마나 있느냐, 논의하지 않았어요. 그 다음날 아침에 하바롭스크 역에서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갑니다. 난 이 대목이 가장 놀랍고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이다운 에너지가 폭발하는 것이죠. 바람처럼 가볍게 했어요. 발딱 일어났어요. 그야말로 청춘은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로구나 생각했습니다.”

안중근은 혼자서, 총 한 자루 들고, 1주일 만에, 복잡한 명분이나 이유를 고민하지 않고, 조선은 물론 동북아 전체를 지배하려는 최고 권력자를 쏘았다. 김훈은 그 이해하기 어려운 에너지를 ‘청춘’이란 말로 포착하려는 듯 했다. 그는 이날 “청춘”이란 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찰스 다윈이 열아홉 살 때 비글호를 타고 세계 일주를 떠나잖아요. 돛단배를 타고 5년간 세계 여행을 하고 돌아와 인류의 정신사를 완전 뒤집어 버리는 책을 쓰는 것이죠. 그게 ‘종의 기원’입니다. 그 때 찰스 다윈의 청춘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죠.”

그는 “청춘은 정말 찬란하구나, 청춘이란 더 나이가 먹어서 완성되는 걸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순간에 이미 완성되어서 폭발하는 것이구나, 그걸 느꼈어요”라고 했다.

김훈은 자신의 이번 소설이 “반일 민족주의로 읽혀지는 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초야에 묻혀 글이나 쓰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개인 의견을 말하라고 한다면, 민족주의는 국권이 짓밟히고 위태로울 때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정신의 동력으로써 매우 고귀한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층 간 먹이 피라미드 관계가 적대적인 현실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현실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되기엔 빈약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