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직 ‘전과자’로 남아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있지만,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한다는 점이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법에 호소하게 되었는데, 20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차라리 법에서 ‘너 형사처벌 받을만해’라고 명확히 선언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두 사법기관이 서로 딴소리만 하고 있으니 마음을 잡기가 더 힘들다. 사정은 이렇다.
그는 2003년에 제주도 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그와 같은 ‘위촉위원’은 정해진 급여 없이 심의할 사항이 생길때마다 회의에 참석하고 소소한 수당을 받는다. 어느 날, 그는 하나의 심의 안건의 평가에 참여했다. 그런데, 얼마 후 평가 대상 업체에서 그에게 억대의 금품을 준 사실이 발각되었고 그는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과정에서 그는 “뇌물죄는 뇌물을 받거나 요구한 ‘공무원’을 처벌하는 죄인데, 자신은 공무원이 아니라 ‘위촉위원’이므로 뇌물죄로 처벌될 수 있는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와 같은 ‘위촉위원’도 뇌물죄로 처벌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그는 재판과정에서 했던 주장을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한번 판단 받아 보기로 하고 헌법소원을 냈다. 오랫동안 판단을 미루던 헌법재판소가 2012년에 드디어 판단을 내렸다. “뇌물죄의 ‘공무원’ 부분에 ‘위촉위원’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즉, 그에게 무죄 판결이 선고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헌법재판소가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제 이 지긋지긋한 불명예의 고통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그의 고통이 끝났을까.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은 그는 2013년 그에 대한 유죄판결을 다시 판단 받기 위해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단호하게 기각했다. 법률 해석 권한은 온전히 대법원을 중심으로 한 법원의 것이지, 헌법재판소가 법을 해석하고 그에 따르라고 할 권리가 없는데, 헌법재판소가 권한을 넘어 ‘위촉위원’이 뇌물죄의 ‘공무원’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이므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다시 좌절했다.
그는 다시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다.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며 다시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대법원과의 갈등을 우려해서인지 결정을 미루던 헌법재판소가 최근에 작심하고 아예 대법원의 재심 기각 판결을 취소해 버렸다. ‘헌법이 법률에 대한 위헌 심사권을 헌법재판소에 부여하고 있으므로,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하는 법원의 재판은 그 자체로 헌법재판소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것이고, 헌법의 결단에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입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면서.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그에 대한 대법원의 재심 기각 판결을 취소했다고 해서 대법원이 다시 재심 개시 결정을 할 것도 아니고, 그가 다시 재심을 청구한다고 하더라도 대법원은 또 다시 기각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헛된 기대만 가진 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를 쳇바퀴 돌 듯이 계속해서 오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싸움에 일개 국민인 ‘그’의 등만 20년째 터지고 있고, 여전히 그는 ‘전과자’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