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환 “다큐멘터리 연극의 진정성과 소통을 고민한다”

입력 2022-07-31 15:49 수정 2022-07-31 18:45
연출가 전윤환이 지난 2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자연빵’ 공연을 앞두고 국민일보 인터뷰에 응했다. ‘자연빵’은 다음달 4~7일 세종문화회관의 컨템포러리 시즌 ‘싱크 넥스트’의 일환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권현구 기자

지난해 6월 서울 신촌극장 무대에 오른 1인극이 연극 관계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바로 극단 앤드씨어터의 연출가 전윤환(36)이 대본을 쓰고 직접 출연까지 한 ‘자연빵’이다. 대학로에서 눈에 띄던 젊은 창작자였지만 2018년 말 강화도로 귀농한 전윤환이 오랜만에 서울에서 선보이는 공연이라는 것과 함께 실제 가상화폐(코인) 투자기를 담은 내용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올해 전윤환은 국립극단과 세종문화회관의 초청으로 잇따라 기획공연에 초청되면서 연극 관계자들만이 아니라 언론과 일반 관객의 주목도 받게 됐다.

하지만 지난 5월 11일~6월 5일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 전윤환의 신작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은 관객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지구촌의 심각한 기후위기를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풀어낸 이 작품이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달 4~7일 세종문화회관의 컨템포러리 시즌 ‘싱크 넥스트’의 일환으로 선보일 ‘자연빵’ 연습 중인 전윤환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에 대한 관객의 극단적 반응

지난 27일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만난 전윤환은 “그동안 내 작업이 대중적이지 않았던 것은 잘 알고 있다. 첫 장기 공연작인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의 경우 많은 관객을 만났지만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면서 “솔직히 관객 반응에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당시엔 프로덕션의 리더로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의기소침해지지 않게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11일~6월 5일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 전윤환의 신작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은 관객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국립극단

전윤환은 대학교 3학년 때인 2008년 앤드씨어터를 결성한 뒤 한국 사회의 날선 화두를 날것 가득한 연극으로 풀어내 주목받았다. 2014년 대학로의 20대 연극인들이 뭉쳐서 만든 ‘이십할 페스티벌’도 그의 발의로 시작됐다. 대학로 연출가의 산실인 ‘혜화동 1번지 6기’(2015~2018년) 동인으로 활동한 그는 2015년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창조경제-공공극장 편’(2017년) ‘전윤환의 전윤환: 자의식 과잉’(2018년) ‘극장을 팝니다’(2020년) ‘강화도 산책: 평화도큐멘트’(2021년) 등은 대표적이다. 국립극단에서 선보인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역시 배우 11명이 ‘작가 겸 연출가’인 전윤환이면서 배우 본인인 ‘나’로 존재하며, 오늘날 기후위기가 자본주의의 욕망 및 속도전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전한다. 특히 이번 작품은 전통적인 기승전결 구조가 아니라 파편처럼 흩어진 이야기들이 기후위기라는 주제로 연결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윤환은 “제 경험을 중심으로 무대에 풀어내는 다큐멘터리 연극에 관객이 공감하면 극 중 고민이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느끼며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공감이 안 되면 작품이 멀게 느껴지면서 왜 자기 사변적인 이야기나 투덜거림으로 시간을 채우냐는 반응이 나온다”면서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에 대한 관객 반응을 보면 기존 연극 팬들이 좋지 않게 본 것과 달리 미술계 관계자들은 호감을 표했는데, 두 장르의 관극방식 차이를 드러내는 것 같다. 아무래도 드라마에 익숙한 연극 관객과 달리 미술 관객은 전시회의 다양한 동선 속에서 스스로 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 작품을 덜 낯설게 느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귀농 연극인 전윤환의 기후위기 감각

어쩌면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에 대해 관객이 낯설게 느끼는 것은 현재 기후위기에 대해 한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과 유사하다. 남·북극 빙하의 해빙, 아프리카의 가뭄, 유럽의 폭염 등의 뉴스를 전하면서 기후위기로 인한 티핑 포인트(임계점)가 7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지적해도 현재 한국의 보통 사람들은 텀블러를 사용하거나 분리수거를 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게 현실이다. 전윤환 역시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서울에 있을 때보다 기후위기를 예민하게 느꼈지만, 문제를 본질적으로 고민한 것은 국립극단의 제안으로 이 작품을 올리게 되면서다.

전윤환이 코인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이야기를 담은 1인극 ‘자연빵’은 지난해 신촌극장에서 초연돼 호평 받은 후 올해 세종문화회관 컨템포러리 시즌 ‘싱크 넥스트’에 초청됐다. 지난해와 올해 공연의 포스터.

전윤환은 “귀농을 택한 것은 당시 서울에서 예술가로서 주목받아야 한다는 압박을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내가 예술가로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을 받기 위해 예술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경쟁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귀농했다고 해서 연극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인천에서 부평아트센터 상주단체로 꾸준히 공연을 올리는 한편 강화도의 집을 예술가 레지던스로 운영하거나 지역 청년들과 워크숍을 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립극단이 김광보 예술감독 취임 이후 3년간 장애, 기후위기, 과학기술을 각각 주제로 잡은 이후 내게 기후위기와 관련해 작업을 의뢰했다. 내가 인천이나 강화도에서 했던 작업과 함께 텃밭을 일구는 경험과 그에 따른 소회를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참고한 듯하다”면서 “예를 들어 농사를 짓다 보면 날씨에 예민해지게 된다. 서울에 살면 잘 못 느끼지만 당장 강수량에 따라 파종이나 작황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립극단이 제게 기후위기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줬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윤환은 지난해 여름 국립극단의 제안을 받은 이후 6개월간 기후위기에 대한 자료 조사를 열심히 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연극 만들기’를 숙제처럼 받게 된 그의 모습은 현재 7년이라는 티핑 포인트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해결책을 만들지 못하는 우리 인류의 모습과 겹친다. 전윤환은 “보통 사람들이 기후 위기를 잘 감각하지 못하는 문제를 갑자기 기후위기 관련 연극 만들기 과제를 받아든 제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잘 안 됐다. 하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만큼 꾸준히 작품으로 만들 생각이다”면서 “예술가로서 우리의 삶 속에서 탄소 발자국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현재 토종 씨앗을 구하는 과정부터 재배까지 1년의 과정을 다루는 작품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공연을 계기로 시민단체 기후위기 비상행동과 인연이 닿아 함께 활동하게 된 것도 전윤환이 기후위기 문제를 좀 더 체화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무대 언어로 풀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자연빵’은 코인 투자 실패한 젊은 층의 자화상
지난해 전윤환이 선보인 ‘자연빵’의 한 장면. ‘자연빵’은 올해 9월 서울아트마켓 PAMS엔 선정됐다. 앤드씨어터

한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 오르는 ‘자연빵’은 호오가 엇갈렸던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에 비해 관객에게 보다 쉽게 다가서는 작품이다. 전윤환이 연극으로 번 돈을 코인에 투자했다가 날리는 이야기는 뒤늦게 코인 열풍에 올라탔다가 재산을 잃고 빚을 진 수많은 20~30대의 모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연 당시에도 자전적 다큐멘터리 연극의 장점인 진정성과 사회와의 연결성을 잘 보여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자연빵’은 오는 9월 서울아트마켓의 ‘팜스 초이스’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윤환은 “‘자연빵’은 전진모 신촌극장장이 내가 직접 출연하는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는 제안에서 비롯됐다. 예전에 신촌극장에서 공연할 때 개인적인 문제로 기간을 단축해 극장에 손해를 안긴 적 있어서 빚을 갚는 마음으로 작품을 올렸는데, 반응이 예상 외로 좋았다. 작년에 ‘영끌’이란 단어가 나올 정도로 청년 세대가 부동산과 주식, 코인 등에 투자하는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됐을 때여서 작품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면서 “올해는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등 경제 악화로 인해 코인이 급락한 상황이다. 반토막을 넘어 80% 이상 떨어졌다. 나를 포함해 대출까지 받아서 투자했던 젊은이들의 경우 갚아야 할 이자도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연 이후 1년이 지난 만큼 작품 수정 여부를 놓고 고민했지만, 작년에 만든 작품이 올해 다시 올라가면서 또 다른 해석의 층이 생기는 것 같아서 안 하기로 했다. 관객은 지난해보다는 좀 더 거리를 두고 젊은 세대의 코인 열풍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피력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