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관습(慣習)이 지배하는 사회” 연극집단 반의 ‘예외와 관습’  

입력 2022-07-31 07:53


연극집단 반의 제34회 정기공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예외와 관습>(연출 김지은 7,21~8,7, 씨어터 쿰)은 2002년도에 박장렬 연출로(혜화동 1번지) 공연되어 그해 제2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 공식 초청된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 연출을 맡은 김지은이 배우로 참여했던 작품으로 연출 데뷔 작품으로 돌아왔다. 김지은 연출의 예외와 관습은 해체와 재구성, 탈 연극들이 코로나 시대에도 속도를 내는 대학로 시장에서 ‘다시, 브레히트’로 역주행하며 관심을 끌고 있다. 제목도 매우 도덕적이고 MZ 세대들한테는 외면 받을 것 같으면서도 관객층은 투텁고 다양하다. 영상이 익숙한 MZ세대 일수록 브레히트를 이해하며 정주행으로 봐야 하는 연극일 것 같다. 브레히트만이 알 수 있는 낯선 사막의 땅에서 벌어지는 지배계급과 자본 계층의 관습은 폭력과 복종, 노동 착취와 죽음으로 일어나고 예외는 살인과 죽음이 정당한 관습처럼 무죄로 용인되는 판결을 듣게 된다. 음악적 리듬과 코러스의 극 중 활용과 합창, 인물의 독주(獨奏)를 확장하고 브레히트적인 서사성을 배우들의 진지한 놀이로 무대로 작품의 의미를 살려내고 있다.


예외와 관습의 유효

세미 뮤지컬 음악극 형식으로 무대의 리듬을 만들면서도 마지막 재판 장면은 연극적인 진지함이 발동된다. <예외와 관습>을 통해 약육강식의 자본계급사회의 관습적인 모순과 부조리한 현상을 넘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총수 일가와 거대 자본가들의 국정농단, 경영비리, 탈세, 횡령의 의혹도 관습적으로 예외적 무죄나 재벌 봐주기 의혹들이 이 작품을 통해 환기되는 것은 브레히트의 작품을 고전으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은 연극집단 반에서 예외와 관습을 올리고자 했던 20년 전 시대의 부조리와 사회적 모순이 여전히 체질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회적 시선들과 극단 레파토리 작품들을 재해석하고 개발해 연극의 연속 가능성에 대해 실험해 보고자 하는 의도로 20년의 먼지를 털어내고 연출로 재소환해 공연하는 이유다.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고 탈 드라마가 다양한 프로젝트 공연으로 배합되는 시대에 연극적인 기술을 부리지 않고 브레히트의 사회적 시선들을 복원해 보려는 연출의 의도로 20년 전 연극집단 반의 <예외와 관습>을 현실 사회의 사회적 시선으로 묶어 브레히트의 언어를 탄력적으로 손질해 무대화 하고 있는 것인데, 브레히트가 그리고자 했던 ‘엘리트 사회가 지배하는 그들만의 리그’의 낯선 국가와 사회가 삶에서 익숙해진 장면들로 무대를 채우고 현실을 타격 할 때는 브레히트 연극의 강력함도 느끼게 된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극중인물 상인(장용철 분)은 석유 사업 최종 협상을 선점하기 하기 위해 다른 경쟁자들보다 우르가 지역에 먼저 도착해야 한다. 길잡이(공재민 분)와 짐꾼,쿨리(송현섭 분)을 고용하고 몽골과 지구 어디쯤, 우르가로 향하는 사막의 길을 떠나는 이야기다. 음악은 브레히트의 서사가 되고 배우들과 코로스 들이 만들어 내는 극 중 장면에서 상인의 지배적 욕망과 관습적인 강요와 폭력, 복종을 바라보게 한다. 홍수로 불어난 강을 건너기 위해 상인이 쿨리를 권총으로 협박하며 험한 물길을 건너 팔과 다리에 심각한 상처를 입는 장면에서는 자본계급 사회의 섬뜩한 잔인함을 느끼게 한다. 해고와 자본가의 위협, 관습적인 착취와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죽음과 살인, 그리고 유죄가 무죄가 되는 재판 판결은 공정, 상식, 정의를 외치는 한국 사회에서 관습처럼 일어나는 인간과 사회의 모순들을 보게 된다. 브레히트적인 시선으로 무대를 구성하고 바라보면서도 관습이 예외를 규정하는 모순과 부조리의 종착역 현장(現場)은 사법 농단과 재판 거래 의혹, 노사분규가 벌어지는 대한민국 현실 사회를 반추(反芻)하게 한다.


연출의 정직한 무대 미학

AI 기술이 연극으로 융복합 되고 무대 배경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무대기술로, 프로젝션 맵핑의 첨단으로 무대를 채색하는 효과들은 현대연극이라는 특수한 장치로 발화되는 시대다. 무대의 질주와 변화의 속도를 유도하고 구조주의적인 텍스트의 개념이 공간, 신체, 시간, 배우의 현존, 퍼포먼스로 이탈해 탈 희곡으로 텍스트화 되거나 기호화 해 해체와 재구성이 유행처럼 무대화 되는 시대에 심리적으로 무대가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다시, 브레히트?’라는 물음을 던지면서도 이 시대 관객과 대면으로 소통해야 하는 아날로그 연극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예외와 관습>은 배우의 감각으로 무대를 관통하는 김지은의 정직한 연극미학이 담겨있다. 배우 출신의 무대연출 과정은 해석과 표현, 배우들의 동선과 연기플랜에서 유연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습적인 판단은 이번 작품을 통해 정직한 무대의 구성과 배치로 예외적으로 작품을 구현해 내는 감각으로 연출의 가능성을 보였다. 정직한 연극 미학은 브레히트의 텍스트를 배우들의 서사극적 연기, 움직임, 놀이로 형상화시키는 가변적인 무대배경(사막, 위험지역, 야영지, 정류소, 강가)과 극적 장치(쿨리의 죽음), 합창과 인물로 변주되는 코로스 장면들을 브레히트식으로 배치하면서도 연극적으로 작품의 의미를 재판 장면으로 확장한다.


사회에서 지배계층(자본가)과 피지배계층 (노동자, 시민사회)의 사회 계급의 경계는 살인을 해도 자본의 부를 축적한 상인은 야영지에서 사막의 별을 보며 부르는 노래의 의미 처럼 ‘부자는 선하고, 가난한 자는 악한’ 평등이 무질서한 세계다. 주인과 머슴으로 신께서 창조하신 자본의 계급사회이며 쿨리의 죽음으로 재판에 서게 된 가해자(상인)와 피해자(쿨리가족)도 관습적인 재판으로 상인의 살인 행동은 정당방위로 무죄가 되는 장면에서 무대는 ‘공정의 저울’이 등장한다. 관객들은 사막에서 상인으로부터 죽어간 쿨리의 살인 사건에 대해 배심원으로 참여한다. 관객은 심리적인 유죄를 선고하는데 권력과 자본에 비대해진 정치인과 한국 정치사의 수많은 ‘유전무죄’의 장면들이 오마주 된다. 공정과 정의가 몰락한 재판거래 의혹들이 스쳐 갈 수 있었던 것은 쿨리의 죽음 이전까지 연극의 흐름을 감상주의와 감정 주의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비판적인 수용의 이성주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래와 서사를 배치해 인물과 극적 장치를 감정의 소외와 배경의 낯섦을 배우들의 놀이성, 코로스, 음악과 노래, 동적인 움직임들로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배우들의 연기인데 브레히트의 작품에서 극중인물로 분해 연기를 한다는 것은 인물과 배우가 감정과 캐릭터로 동화된 연기를 고착해온 배우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면서도 브레히트의 연기는 극 중 인물화 된 진실된 놀이의 행위다. 때로는 인물화 된 감정의 몰입성을 제거하고 연기를 극중인물의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배우로, 때로는 감정을 순환하고 환기시켜 이성의 경계로 캐릭터의 놀이성으로 무대로 활보해야 하는 브레히트 작품의 배우들은 고도의 연기의 전문성(기술)을 요구한다. 역할 밖으로 캐릭터와 감정을 유도하지 못하면 브레히트는 뭉개지고 의미는 모호해 질 수 있는데도 이번 <예외와 관습>에 코로스로 분한 연극집단 반의 젊은 단원(김진영, 이가을, 송지나, 유지훈, 차지애, 박양지, 박성재) 들은 다양한 합창과 군무, 놀이성으로 무대를 활보하는 진지한 놀이로 코로스와 극중인물로 분해 관습적인 형식을 걷어내고 예외적인 다양한 표현성으로 브레히트의 분위기를 살렸다.


자본가(상인)로 분한 배우 장용철은 연기의 감각과 몸이 무대로 체득된 배우이고 연륜은 장용철의 언어로 무대화 된다. 길잡이로 분한 공재민, 쿨리의 송현섭은 역할의 정직함으로 작품의 의미를 더 귀하게 만들어내는 배우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품의 의미,(프롤로그) 코로스 음악과 군무, 독주와 합창, 객주 장면, 장면에서의 브레히트적인 서사성과 놀이, 재판 장면들이 소홀함이 없이 정직하게 무대를 채우려다 보니 때로는 무대가 활력이 보이면서도 무거워진다. 의미를 살짝 걷어내고 브레히트적인 음악과 등장인물의 독주들이 서사극적 놀이로 무대의 균형을 조금 이탈해 보면 어떨까. 공정과 상식, 정의를 외치는 요즘, 우리는 어떠한 국민적 판단을 해야 할지 한 번쯤 되돌아 보고 싶다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연극집단 반의 <예외와 관습>을 추천한다. 8월 7일까지 씨어터 쿰에서 공연된다.



| ​배우이자 연출 김지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극단 성좌(1992~1996) 단원으로 <오감도>, <신더스>, <베니스의 상인> 등에 활동했다. 1996년 부터 연극집단 반 창단멤버로 극단을 지켜온 대표적인 배우다. <케첩과 마요의 사랑>을 시작으로 <바라헤라>, <블루테>, <모두의 남자>, <페퍼는 나쁘지 않아>, <집을 떠나며> 등 50여 작품에 출연하며 좋은 연기를 보여 왔으며 2020년부터 극단의 5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김지훈(호프랜드), 이가을(개미굴, #엘렉트라, 페퍼는 나쁘지 않아) 등은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다양한 소재의 희곡을 쓰고 극단에서는 젊은 단원들의 작품들을 생산적으로 무대화 하면서 연극집단 반을 제2의 활동의 전성기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극집단 반의 제작으로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미궁의 설계자-509호실>(김민정 작, 안경모 연출)을 앞두고 있다. 이번 <예외와 관습>의 음악은 박진규가 맡았으며 공연 사진은 김명집 작가가 참여했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