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병헌이 영화 ‘비상선언’으로 오랜만에 관객들과 극장에서 만난다.
이병헌은 2020년 ‘남산의 부장들’ 출연했다. 이후 코로나19로 출연작들의 개봉이 미뤄지면서 의도치 않게 공백이 생겼다. 다음 달 3일 ‘비상선언’ 개봉을 앞두고 이병헌은 28일 기자들과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팬데믹 상황을 지나면서 ‘비상선언’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훨씬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작품에서 이병헌은 아픈 딸을 위해 비행공포증에도 불구하고 하와이행 비행기에 타는 재혁역을 맡았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부성애에 가득 찬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시에 재혁은 위기에 처한 비행기를 구하기 위해 예상치 않은 활약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병헌은 재혁에 대해 “승객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비행기에 타는 것 자체가 이미 공포인 사람이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에도 당황하며 놀라고, 누구보다 두려움을 먼저 표현한다.
재혁의 신은 대부분 비행기 내부에서 이뤄졌다. 테러를 당한 비행기 내부를 보여주기 위해 제작진은 360도 회전하는 짐볼을 활용했다. 배우들의 안전 확보가 중요했다. 이병헌은 “만에 하나 잘못되면 어쩌나 그런 공포스러움이 연기에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승객들의 머리가 하늘로 솟고 벨트를 매지 않은 사람이나 승무원이 천장으로 치솟았다가 떨어지는 장면은 이 영화의 시그니처 장면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아버지 연기는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이병헌에게도 실제 아들이 있기 때문에 부모로서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다만 그는 아들과 딸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이 있는 지인들을 관찰했다고 전했다. 딸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아이와 이야기할 때 취하는 제스쳐나 눈빛, 말투도 섬세하게 고려했다.
비행공포증을 갖고 있는 재혁의 모습을 연기할 때는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는 20대 중반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공황장애를 경험했다고 했다. 기내에서 의사를 찾을 정도로 심한 증상이었다. 이병헌은 “재혁이 어떤 공포를 느끼고 몸의 증상이나 호흡은 어떨지, 그때 눈빛과 표정은 어떨지 감독과 많이 논의했다”며 “공황장애에 대한 표현은 슬쩍슬쩍 나오지만 그걸 아는 사람으로서 리얼하게 잘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최근 이병헌은 보다 친근한 캐릭터로 대중을 만나고 있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40대 초반 남성의 삶을 연기했다. 의도한 건 아니라고 했다. 스스로도 이런 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때 더 편하다고 했다. 이병헌은 “스파이, 재벌, 킬러 등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없는 역할을 하는 캐릭터보다는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의 모습을 연기할 때가 훨씬 (연기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비상선언’에서 승객들은 같은 위기에 맞닥뜨려도 각자 다른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는 자신의 안위를 우선 생각하고, 누군가는 급박함 속에서도 이타심을 발휘한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모습을 묻자 이병헌은 “상대방의 입장이 돼서 생각해보면 인간의 가장 기본은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며 역지사지의 자세를 언급했다. 그는 “영화를 보면 여러 인간 군상들이 나오고 ‘나라면 과연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했을까’하면서 자기를 대입시켜 스스로 질문하게끔 만드는 상황들이 여러 군데 있다”며 “인간이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모습들을 통해서 인간 자체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한다”고 전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