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정위 행정조사…수사절차 준하는 기본권 보장장치 마련돼야

입력 2022-07-28 12:22

정부는 지난 13일 경제형벌 규정 개선 태스크포스(이하 TF)를 출범시키며 과도한 경제법률 형벌조항을 대대적으로 손보는 작업에 착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법무장관에게 위 내용을 별도로 지시하기도 했다. 기업 및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은 경영을 위축시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는 지적을 고려한 것이다. TF는 국민의 생명․안전과 관련이 없는 경미한 경제법률 위반은 형사처벌 대신 행정적 제재로 규율하겠다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행정조사 거부'를 들었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이른바 '조사방해 처벌규정'에 의하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현장(사업장) 진입을 저지하거나 자료를 은닉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기피한 자는 벌금 또는 징역형에 처하게 된다. TF는 이에 대해 폭행 등의 불법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단순히 조사를 거부하거나 서류 작성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벌금․징역형을 부과하지 않고 행정제재로 마무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이러한 처벌규정 완화로 인해 피조사기업들이 현장조사를 거부하거나, 관련 자료를 은닉․훼손하는 등의 꼼수를 부리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제성 있는 공정위의 고권적 행정조사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적법절차원칙 등 공권력 남용을 통제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그 동안의 평가를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입법 개선은 충분히 타당해 보인다.

공정위의 행정조사는 피조사기업의 동의를 전제로 한 임의조사를 원칙으로 하지만, 위와 같은 조사방해 처벌규정으로 인해 기업이 조사받기를 거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나아가, 공정위의 행정조사 결과 피조사기업의 행위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판단될 경우, 과징금 부과 등 행정상 제재처분을 받는 것을 넘어 형사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는데 이 경우 행정조사의 결과물이 수사절차에서 그대로 사용될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추가적 수사 없이도 행정조사 결과물을 그대로 활용한 형사소추가 가능할 수 있다. 결국, 기업의 입장에서 공정위 현장조사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러한 조사는 형식은 행정조사지만, 그 실질이 형사상 강제수사와도 같으므로,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형사 피의자 및 피고인의 인권보장을 위해 마련된 다양한 원칙(진술거부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통해 통제돼야 마땅하다.

헌법 제1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하여 형사책임에 관련한 직․간접적 사실에 대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한다. 진술거부권의 의의는 피의자 및 피고인의 인권을 실체적 진실 발견의 가치보다 우선시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공정한 재판의 이념 실현을 위한 수사기관과의 무기(武器)평등을 도모하는 데에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진술거부권은 비단 형사절차뿐만 아니라 행정절차나 국회에서의 조사절차에서도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위와 같은 점에서 볼 때 현행 공정거래법상 조사방해 처벌규정은 형사책임의 증거가 될 수도 있는 기업의 진술을 과도한 형사처벌로 강제함으로써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거부권을 침해한다고 볼 우려가 있는 것이다.

한편, 근래 들어 공정위 현장조사 과정에서 피조사기업과 변호사 사이 법률질의회신 등의 의사교환 문서를 증거로 제출할 것을 종용한 사실이 종종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공정위가 초기조사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피조사기업의 법무 담당자 PC를 우선적으로 조사해 관련 문서를 입수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헌법 제12조 제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문에는 체포․구속을 당한 자로 한정하고 있으나, 이것은 체포․구속을 당한 때 위 변호인의 조력이 특히 더 강조돼야 한다는 의미이므로 임의동행으로 연행되거나 불구속 상태의 피의자 또는 피고인도 포함된다. 아울러 이는 형사절차뿐만 아니라 행정절차에도 적용되어야 하므로, 공정위 행정조사 대상기업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은 틀림없다. 그런데 변호인으로부터 충분한 조력을 받는 것은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비밀이 유지된다는 확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미법계와 일부 대륙법계 국가가 변호사-의뢰인의 비밀유지 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을 인정해 그 의사교환 내용을 보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뢰인의 입장에서 자문내용이 비밀로 유지될 것을 확신할 수 없다면 그것이 외부로 공개될 리스크로 인해 변호사로부터 적절한 조언을 받기 어려워지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공정위가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의 의사교환 내용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근절돼야 할 것이며, 그러한 내용이 행정처분의 증거로 기능할 수 없도록 입법을 보완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공정위 조사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일정 수준의 행정적 강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조사가 국민에 대한 침익적 처분 또는 형사처벌과 연계되는 이상 조사과정의 당사자에게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정립된 각종 절차적 권리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국민 기본권 보장과 행정의 효율성 확보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모쪼록 금번 경제형벌 규정 개선 작업에 위와 같은 고려들이 반영됨으로써 공정위는 ‘조사권 남용 경제검찰’이라는 오명을 벗고, 기업은 적절한 방어권을 토대로 꼼수 없이 충실하게 조사에 응하게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우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