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영상으로 날아온 성폭력 피해 증언… ‘원격 신문’ 첫 유죄

입력 2022-07-28 11:38 수정 2022-07-28 11:54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증인신문 사례. 여성가족부 제공. 기사 내용과는 관계 없음.

지난달 14일 국내 법정에 놓인 대형스크린에 미국 애틀랜타 총영사관과 연결된 화면이 나타났다. 화면에는 국내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외국인 여성이 앉아 있었다. 강제추행 혐의를 받는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고, 피해자가 외국에 있어 혐의 입증이 어려워지자 검찰이 한국과 미국을 잇는 영상 증인신문을 실시한 것이다.

서울동부지검 공판부(부장검사 조영희)는 해외 증인을 상대로 한 원격영상 증인신문의 증거 능력이 처음으로 인정돼 최근 법원이 강제추행 피고인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국적의 남성 A씨(28)는 지난해 4월 제주도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외국 국적의 여성 B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침대에 누워 자려던 피해자의 옆으로 다가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국내에서 같은 대학교에 다니던 사이였다.

재판 진행 도중 B씨가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국내 법정 출석이 곤란해졌다. 피해자이자 핵심 증인의 법정 현장 증언이 어려워진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8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도입된 원격영상 증인신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검찰은 지난 3~5월 국선변호인을 통해 피해자를 접촉, 신문에 응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했다. 이후 재판부에 피해자가 사는 플로리다 인근 공관인 애틀랜타 총영사관의 협조를 구해줄 것을 요청했다.

처음 시행되는 원격영상 증인신문에 유관 부처가 총동원됐다. 검찰은 법무부 국제형사과와 협의해 원격 신문이 주권침해 소지가 없는지 등 적법성을 확인했고, 외교부는 재판 일정 조율을 맡았다. 마지막으로 해외 공관에 있는 컴퓨터에 국내 영상재판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카메라 테스트를 거쳤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 증언이 결정적인 재판에서 검찰이 능동적으로 진술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