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엠립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쿤리엄. 최근 취재진이 방문한 이곳은 182가구 950여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비포장도로를 사이에 두고 대추야자 나무가 가로등처럼 서 있는 농로를 지나자 햇빛가리개가 부착된 작업용 모자를 쓰고 경운기에서 내리는 한 남자가 보였다. 이곳에서 8년차 농부로 살아가고 있는 김창훈(58) 예수마을 선교사였다. 특이하게도 경운기에는 농기구 대신 20리터짜리 물통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지하수를 먹을 수 없어요. 비소나 중금속 함유량이 높아서 생수를 사 먹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지요. 일단 식수 문제부터 도움을 줘야겠다고 마음 먹고 지하수를 퍼 올리고 정화 장치를 마련했다가 이렇게 ‘물 장수’ 역할을 맡게 됐네요. 하하.”
김 선교사의 하루는 매일 오전 7시에 직원들과 예배를 드린 뒤 주민들에게 물 배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3~4시간이 걸리는 고된 작업이지만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기회이자 심방 시간이다. 정수 작업실 입구엔 ‘JLW’라는 현판이 달려 있었다. 그는 “‘생명의 우물’이란 이름으로 처음 이 사역을 시작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물의 이름을 ‘지저스 리빙 워터(Jesus Living Water)’로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수마을의 울타리는 36만 제곱미터(약 12만평)에 달한다. 1999년 GMS(총회세계선교회) 파송으로 프놈펜에서 활발하게 제자훈련 사역을 펼치던 그는 지난 2015년 이곳에 둥지를 트고 정수 작업실, 농기계 창고,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예배당과 게스트하우스를 손수 지었다. 현지인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함께 마을을 만들고 살아야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프놈펜에선 청년 30여명과 합숙하면서 연중 5개월은 각 지역으로 전도여행을 다녔습니다. 지도 하나 펼쳐놓고 한 지역을 핀으로 꼽고 같이 기도하고 직접 찾아가 일주일 동안 전도도 하고요. 그렇게 11명의 현지인 목회자를 양육해 지역 곳곳으로 파송을 했습니다. 저도 그들처럼 쿤리엄 마을로 파송된 셈이지요.”
지역 탐방을 하던 김 선교사의 눈에 띈 건 주민들의 생활양식이었다. 시엠립 인근 주민들의 경우 앙코르와트를 찾는 관광 시장에서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쿤리엄 마을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현저하게 낮았다.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주민들에게 단순히 ‘예수 믿고 천국 가자’는 말은 효용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주민들과 함께 삶의 기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지요. 비즈니스 선교에 대해서도 깊이 공부하면서 경제의 영역을 선교의 영역으로 전환해가는 아이디어도 찾게 됐어요.”
김 선교사는 지역 특성과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연구한 끝에 ‘더불어 농장(Living together farm)’ 사역을 시작했다. 가난한 농가에 암소를 분양해주고 새끼를 낳으면 젖뗀 새끼를 또 다른 가정에 분양하는 ‘암소 은행’, 주민들의 자립을 돕는 양계장, 묘목장 사역을 차례로 펼쳤다. 2년 전부터는 마을 내 25가구와 같이 협동조합도 만들었다. 지금은 예수마을에서 현지인 네 가정과 함께 캐슈넛 나무 1500그루, 대추야자 나무 600그루, 소 21마리 등을 키우며 주민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땐 그야말로 황무지였습니다. 농사엔 문외한이었기에 고민도 적지 않았지요. 하지만 기도하면서 걱정이 사라졌어요. 노아도 별안간 조선업자가 됐잖아요. 별안간 농부가 된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순종’이라는 겁니다. 예수마을이 하나의 모델이 되어 제2, 제3의 예수마을이 생기고, 의료선교 마을, 은퇴 선교사 마을로도 확장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게 하나님이 제게 주신 ‘길 만드는 사람(way maker)’로서의 소명입니다.”
시엠립(캄보디아)=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