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광복절 특사와 형평성

입력 2022-07-24 21:49

20년 전, 코미디 영화 ‘광복절 특사’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6년 동안 땅굴을 파서 탈옥에 성공한 두 사람이 자신들이 광복절 특사 명단에 끼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사실 교도소 재소자들은 보통 1년에 두 번 있는 특사, 즉 광복절 특사와 성탄절 특사에 자신이 포함되기를 간절히 기대하여 수감생활을 한다. 특히 정치적 이유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뇌물죄 등 온갖 파렴치한 이유로 수감된 정치인들이 특사에 대해 거는 기대는 일반 재소자의 그것에 비해 훨씬 높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정부가 이들 정치인들의 기대를 만족시켜 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특사’는 ‘특별사면’의 준말인데, 사면은 형벌의 집행을 면제하거나 경감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역사적으로는 절대군주제 시절의 ‘군주가 형벌을 집행하지 않고 군주의 권한으로 은혜로이 용서해준다’는 ‘은사권’으로부터 유래했다.

형의 선고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행해지고, 그 형벌의 선고가 어떠한 법률 효과를 발생하는가에 관해서도 법률상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정부의 권력으로도 이를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법치국가의 대원칙이다. 권력분립이 정착된 오늘날의 법치국가에서 재판은 사법부 고유의 권한이므로, 사법부 이외의 존재가 사법에 간섭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유일한 예외로 인정되는 것이 절대군주제 시절 은사권에서 유래한 대통령의 사면권이다. 우리나라는 심지어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사면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형의 선고나 집행을 추후에라도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관의 오류 가능성 등 사법체계의 본질적 한계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특히 전두환 세력에 의해 내란죄 등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정적에 의해 극형이 확정된 정치범은 법치주의 체계에서는 마땅히 구제할 방법이 없지만, 사면을 통하면 형의 집행을 면하면서도 정치적 분란의 소지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형평성’이다.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고 범죄의 종류를 지정해서 이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인에 대해서 형을 면제하는 ‘일반사면’의 경우에는 형평성이 문제될 소지가 적지만, 대통령이 아무런 제한 없이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특별사면’의 경우에는 형평성에 반할 소지가 많다. 지금까지 정치인이나 재벌 아니고 특별사면을 받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2022년 광복절을 앞두고 어김없이 광복절 특사에 대한 군불 때기가 시작되었다. 지난 성탄절 특사에 이어 이번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름이 거론된다. 이 전 대통령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000만원이 확정되어 오는 2036년에 만기 출소할 예정이다. 2018년 3월 22일에 구속됐으니까 지금까지 기껏 4년 조금 넘게 복역했다.

이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정치적 이유로 형을 선고받은 정치범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뇌물 등 개인적 이익취득의 도구로 이용한 부패한 뇌물범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이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권력분립이나 법치주의 원칙에 대한 중대한 예외이니만큼 형벌권의 실현보다 더 중대한 공익이 있을 때만 정말로 예외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만약 중대한 공익적 필요가 아닌 정치적 필요에 의해 특별사면을 행한다면 치러야 할 반대급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현재 이 전 대통령은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상태인데, 20년 전 코미디 영화처럼 이번 광복절 특사 명단에 끼기 위해 서둘러서 교도소로 돌아가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