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한국은 남녀차별이 극심하고 여성의 인권이 바닥에 있던 때였다. 이때 기독 여성들은 문맹 퇴치, 공창 폐지, 농촌계몽 운동에 앞장섰다. 6·25 한국전쟁 후 한국엔 부모와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여성들이 늘어났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넘쳐났다. 당시 기독 여성은 여성들에게 농업 축산 원예 가내수공업 등의 기술을 가르쳤으며 고아들을 보살폈다.
그 후에도 기독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호주제 폐지를 위해 노력했으며 노동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또 기후 위기를 막는 환경보호 운동, 급증한 이주여성을 위한 보호 활동 등을 펼치며 사회가 어려움에 닥칠 때마다 힘을 보탰다.
이 같은 기독 여성들의 활약상은 한국YWCA연합회(회장 원영희)가 개최한 역사 포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연합회는 22일 서울 중구 서울YWCA회관에서 역사 포럼을 열고 지난 100년 기독 여성들의 헌신을 기억했다.
포럼에서 김은하 장신대 교수는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전후 시기 한국YWCA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원을 요청함으로써 민간 외교관 역할을 담당했으며 국난의 시대에도 인재를 양성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준비했다”며 “시대가 급변할 때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생명 살림의 정신을 실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손승호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사무국장은 “1920~1930년대 농촌계몽 운동은 남성 업무의 보조적 역할을 가르치는 수준의 강좌에 머물렀으며 도시 중심의 엘리트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 또 일제 강점기에는 일부 지도자들이 일본과 손을 잡았으며 일본YWCA에 가입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연합회가 누구와 손을 잡고 정의와 평화를 위한 여정을 계속할지 고민을 거듭하며 왜 한국 사회에 연합회가 존재해야 하는지 증명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독 여성들이 100년 이후에도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청년 리더십 재건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곽지영 숭실사이버대학교 교수는 “연합회 내 성인 회원 대비 청(소)년 회원 수는 1994년 19%에서 2017년 9.7%로 줄어들었다”며 “연합회가 최근 청년 이사를 선임하는 등 청년들이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한 만큼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함께 소통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글·사진=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