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이한결 기자 “권씨네 꿈꾸는 만물트럭” 이달의보도사진상 최우수상

입력 2022-07-21 10:56 수정 2022-07-21 18:00
“빵, 우유, 요구~릇트, 오이 50개 1만~5000원.” 지난 9일 인천 옹진군 승봉도에 앰프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물트럭을 모는 권병도(66)씨가 섬에 도착해 녹음한 이번 주의 신상품 목록이다. 권씨는 한 주씩 번갈아 가며 승봉도와 대이작도, 자월도와 소야도를 각각 2박3일 일정으로 방문해 섬마을 주민들에게 각종 채소, 식료품, 잡화 등을 판매한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트럭 만물상 동석(이병헌)이 다른 상인에게 물건을 산 주민들에게 화내는 장면이, 권씨가 한 다큐에서 보였던 모습과 흡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면적 2.22㎢의 작은 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트럭이 어느 집 앞에 멈춰 서자 할머니 한 분이 나와 취나물, 매실, 설탕, 두부 등 몇 주는 거뜬히 먹을 식료품을 가리켰다. “배가 하루 한 번밖에 안 댕겨서 이 장사(권씨) 아니면 우린 살도 못 해”라며 바지춤에서 10만원이 넘는 돈을 꺼내 건넸다. 필요한 물품들을 문 앞에 놓고 가는 권씨의 트럭은 주민들에겐 섬마을 로켓배송이나 다름없다. 권씨는 거래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주민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마을 곳곳에 웃음꽃을 피워냈다. 2주에 한 번 찾아오는 권씨는 주민들에게 반갑고 고마운 손님이다. 2011년 승봉도에서 주차해둔 권씨의 트럭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에 타 전소됐다. 현장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함께 눈물을 훔쳤다. 석 달이 넘도록 장사를 하지 못한 권씨에게 섬마을 주민들은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고마운 손님들에게 빚을 질 수 없었던 권씨는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고 다시 섬으로 향했다. 사과를 가득 싣고 덕적도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20여 년 간 이것저것 담다 보니 지금은 조수석까지 가득 채우게 됐다. 트럭을 몰며 두 딸을 시집보내기도 했다. 이날 장사를 마치고 선착장에 차를 댄 권씨는 “무릎도 아프고 손목도 돌아가고 올해가 마지막일 수 있어. 이제는 이 트럭을 캠핑카처럼 고쳐서 전국 방방곡곡 원 없이 돌아다니다가 좋은 자리 있으면 자리 잡고 여생을 보내고 싶어”라고 말했다. 별빛 아래 잠자리를 마련한 권씨는 오늘도 트럭에 꿈을 싣는다.

국민일보 이한결 기자의 “권씨네 꿈꾸는 만물트럭”(사진)이 한국사진기자협회 선정 제234회 이달의 보도사진상 스토리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기자의 사진은 인천 옹진군 일대의 섬에서 만물트럭을 모는 권병도씨의 삶을 정감있게 보여준 사진으로 지난달 15일 본보 ‘앵글속세상’ 지면에 게재됐다. 이달의 보도사진상은 뉴스, 스포츠, 피처&네이처, 스토리, 포트레이트 5개 부문에서 전국 신문통신 소속회원 500여 명이 지난 6월 취재 보도사진 작품 중에서 각 부문 별로 심사를 거쳐 수상작을 선정했다.

국민일보 사진부 이한결 기자

서영희 기자 finalcut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