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게임사들이 대륙의 규제를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로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반면 ‘사드 사태’ 이후 중국 시장 진출이 막힌 국내 게임사는 발을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국가 간 상호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는 ‘말뿐인’ 정책 기조만 되풀이하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게임사에 전가되고 있다.
세계 게임 시장 점유율 1위 중국, 공격적인 활로 찾기
세계 게임 시장에서 중국의 입지는 상당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중국은 세계 PC 게임 시장에서 굳건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 모바일 게임 시장 점유율 2위(18.1%)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시기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4위다. PC 시장에선 12.4%로 3위를 차지했다.
근 10여 년 사이 중국 게임사의 개발 경쟁력은 남다르게 성장했다. 동력을 얻은 중국 게임사들은 막대한 투자금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에서 적극적인 사업을 벌이고 있다. 국내 시장도 주 타깃이다.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인 텐센트는 국내에 텐센트코리아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텐센트는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제작사 라이엇 게임즈 지분을 100% 보유 중이다. 별도 투자 자회사를 통해 국내 게임사 크래프톤의 2대 주주로 지분 13.53%를, 넷마블의 3대 주주로 지분 17.52%도 확보하고 있다. ‘원신’으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미호요 또한 국내에 자회사 코그노스피어를 두고 있다.
중국 국가신문출판서는 게임 서비스 허가권인 판호를 통해 포화 상태인 게임 시장을 규제하고 있다. 판호는 자국 게임사에 발행하는 ‘내자 판호’와 해외 게임사에 부여되는 ‘외자 판호’로 구분된다.
자국 게임사조차 판호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 12일 중국은 67개 게임을 대상으로 판호를 발급했다. 이 중 중국 양대 게임사인 텐센트와 넷이즈의 게임은 포함되지 못했다. 앞서 중국 당국은 지난 4월과 6월 각 45개와 60개의 판호를 발급한 바 있다.
당국의 청소년 게임 규제 지침 또한 엄격하다. 관영 매체인 경제참고보는 작년 8월 게임을 ‘정신적 아편’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후 당국은 게임 중독 방지를 이유로 미성년자 게임 이용 시간을 주말(금~일요일) 및 법정 공휴일에 오후 8시부터 1시간만 하도록 제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중국 당국의 강도 높은 게임 규제 탓에 중국 게임사의 탈중국 움직임도 보다 가속도가 붙고 있다. 최근 텐센트는 국내 게임 업계 협의체인 한국게임산업협회에 가입 신청서를 접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입 불가능한 ‘블루 오션’… “한국만 차별하고 있어”
반대로 국내 게임사는 ‘기회의 땅’ 중국 진출이 사실상 막혀있다. 한국게임학회 회장을 역임 중인 위정현 중앙대학교 교수는 이를 심각한 불평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정부가 개입해서 특정 서비스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정하는 것 자체가 WTO가 정한 상호호혜주의 원칙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외자판호를 받은 게임은 최근 5년간 4종뿐이다. 지난 2020년 말 컴투스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 이후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 등 일부 게임에 외자판호를 발급한 바 있다.
지난 12일 넵튠의 자회사 님블뉴런의 지식재산권(IP)인 ‘이터널 리턴: 인피니트’에 발급한 서비스 허가도 내자 판호였다. 이번에 판호를 받은 게임은 님블뉴런의 중국 파트너사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불균형·깜깜이 행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게임사에 돌아간다. 국내 게임사 입장에서 중국은 진입 불가능한 ‘블루 오션’이다. 콘진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00년대 초부터 한국 게임을 가장 많이 수입했다. 2020년 국내 게임의 주요 수출국 조사에서는 중국이 35.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판호를 받지 못했음에도 서비스 중인 게임의 인기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시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국내 게임사 관계자는 “중국 진출이 막혀있어서 답답하다”면서도 “워낙 큰 시장이라 게임사 입장에선 꾸준히 트라이 해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위 교수는 “판호의 쟁점은 한국만 차별한다는 점”이라면서 “중국은 일본, 미국, 유럽에 몇백 개의 외자 판호를 내줬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6년간 3개를 내준 것은 사드 이후 한한령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국내 게임사는 중국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활동하기 어렵다”며 “서비스 허가증, ICP 허가증 등 여러 개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외국 업계가 이를 얻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손 놓고 있는 정부
사드 사태 이후 기울어진 한중 게임 시장 상황에 대해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지난해 10월 29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를 만나 판호 발급 확대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를 요청한 것이 전부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국 게임의 중국 내 서비스 규제는 불공정 무역”이라면서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당선 후 제시한 국정 과제에는 이러한 약속이 빠져있었다.
지난 1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게임 업계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판호 문제 해결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외교부, 경제부처를 통해 게임업계의 목소리를 실감 나게 전달해 정책 우선순위에 놓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할 뿐 구체적인 이행안은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상황이 되려 악화할 조짐도 보인다. 윤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여로 인해 중국 판호 발급이 더욱 어려워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며 탈(脫)중국 기조를 시사했다.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수년 동안 판호 관련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적 조치를 촉구해온 위 교수는 “판호는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정부가 잘 협상하면 판호를 다시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진솔 인턴기자 s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