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에서는 선무당을 ‘선은 미숙하다는 뜻으로 직업적인 전문 무당과 비교할 때 가무보신(假無寶神)에 숙달되지 못한 서툴고 미숙한 무당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무속인에 속하는 무당은 신을 몸으로 영접하고 점을 쳐서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인데,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아픈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행위도 했다. 그런데 제대로 신내림을 받지 못한 선무당이 잘못된 치료방법을 알려주는 바람에 환자가 목숨까지 잃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유래했다.
사람은 보통 ‘안 된다’는 말보다 ‘된다’는 말을 더 믿고 싶은 심리가 있는 지라 전문 무당의 ‘안 된다’는 말보다 선무당의 ‘된다’는 말에 현혹되기 마련이다.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선무당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보통은 ‘브로커’라고 통칭하는데, 이들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얄팍한 지식으로 되지도 않는 일을 된다고 장담하며 종국에는 막대한 피해를 준다.
김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때부터 안 해본 일 없이 산전수전 다 겪으며 착실히 돈을 모았다. 그러자 기회가 왔다. 창고업을 하던 누가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했는데, 싼 값에 창고를 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창고를 인수했다. 그런데 이 창고가 대박이 났다. 타고난 성실성과 정직한 성품 덕분인지 고객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10년 만에 100억원이 넘는 자산을 일궜다.
언제부턴가 김씨는 김 회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어느 외국계 봉사단체에서 회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단체나 회장으로 행세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돈이 없는 사람은 회장이 될 수도 없고 시켜주지도 않는다. 설령 운 좋게 회장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회장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
김씨는 서서히 ‘회장’에 중독되어 갔다. 봉사단체 회원의 추천으로 어느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에 입학해서 그 모임에서도 ‘회장’을 맡았다. 씀씀이가 커졌고, 일하느라 시간이 없어 잡을 엄두도 못 냈던 골프채도 쥐기 시작했다.
김 회장이 골프에 푹 빠져 지낼 즈음, 최고경영자과정에서 만난 사람과 그 일행 세 명과 함께 일주일 일정으로 몽골 골프 여행을 떠났다. 라운딩 도중 최고경영자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타준 커피를 마셨는데, 정신이 몽롱해지고 배포도 커지게 되어 내기 판돈을 아무리 키워도 게의치 않게 되었다. 그렇게 골프 여행이 끝났을 때 김 회장은 20억원을 잃었다.
김 회장은 사기를 당한 느낌이 들고 돈도 아까워 외국계 봉사단체 모임에서 몽골 골프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전직 경찰이었다는 한 회원이 나섰다.
“회장님, 제가 경찰이었을 때, 이런 사건을 많이 다뤄봤는데, 회장님은 사기 골프단에 당하신 겁니다. 제가 이런 일을 많이 처리해봤습니다. 그런데, 비용이 조금 들어갑니다. 우선 2000만원만 주시면 제가 돈을 반드시 찾아드리겠습니다.”
김 회장은 전직 경찰이었다는 말과 20억원을 반드시 찾아주겠다는 장담에 현혹되어 즉시 2000만원을 건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가 어느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최고경영자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김 회장을 공갈죄로 고소했으니 피의자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직 경찰이었다는 회원이 몽골 골프 여행을 다녀온 일행들에게 김 회장에게 위임을 받았다면서 돈을 반환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는 물론 조폭을 동원해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회원은 전직 ‘의용’ 경찰이었다고.
현재 김씨는 허울 좋은 ‘회장’의 옷을 벗어 던지고 변호사와 함께 선무당과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을 수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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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