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질병, 전제가 잘못됐다”

입력 2022-07-17 18:51 수정 2022-07-19 12:13

중독, 부작용 중심의 게임 관련 연구가 전제에서부터 잘못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의 국내 도입 여부가 30개월 내에 가려질 예정인 가운데 이번 연구가 ‘게임=질병’ 프레임에 적잖은 균열을 낼 거란 평가가 나온다.

15일 서울 중구 소재 CKL기업지원센터에서 열린 ‘게임 이용자 패널·임상의학 연구 결과발표회’에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게임 과몰입은 일시적 현상이거나 외부 요인에 의해 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게임과 과몰입이 직접 연관이 있다는 증거가 없었다”고 했다.

지난 2019년 5월 국제보건기구(WHO)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게임이용장애는 ‘6C51’이라는 코드가 부여됐다. 다만 WHO의 질병 기준은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사후 처리는 각국 보건당국의 의지에 달려있다. 국내 도입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가 통계법에 의거 5년마다 개정되기 때문에 이르면 2025년 이뤄질 전망이다. 국내에선 문체부, 복지부 등이 참여한 민관협의체가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게임 질병코드 국내 도입의 적절성, 영향 등에 대한 연구를 용역 형태로 지난 2020년부터 위탁 진행하고 있다. 이날 발표한 두 연구는 게임을 과몰입, 중독, 부작용 중심으로 조사하던 기존 프레임에서 벗어난 종단적 조사·관찰 방식으로 이목을 샀다.

지난 2020년부터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를 진행한 조문석 한성대 교수는 “게임 과몰입이나 선용 자체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기보다 개인이 처한 내외적 특성에 따라 발현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지난 몇 년간 게임을 건전하게 즐기는 ‘선용군’이 가장 큰 증가세를 보였다면서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에선 1년 이상 게임과 관련한 장애 행동이 지속되는 경우를 게임장애로 분류하고 있다. 이 기준대로라면 이번 조사에서 단 1명 만이 과몰입군에 포함된다”면서 “이 사실은 대부분의 게임 이용자는 일시적으로 문제를 겪더라도 게임 외적인 제3요인에 의해 그러한 상태가 완화되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지난 2020년부터 5년 계획으로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에선 게임 과몰입의 원인을 단순 게임과 이용자 사이의 관계 규명에 머물러 있던 것에서 벗어나 게임과 사회적 관계, 게임과 소비, 게임이용자의 심리, 게임과 학습, 게임과 문화 등 다각적으로 게임과 이용자의 관계를 다뤘다.

조 교수는 단순 게임과 이용자의 관계에만 집중하던 것에서 벗어나 부모와 아동·청소년을 묶어 조사하는 새 방식으로 게임 과몰입의 종합적 연관성에 집중했다.

패널로 참여한 장유진 충북대 교수는 “부모의 양육 태도는 아이의 게임 이용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칠 텐데, 이 연구를 심화하면 더 분명한 의미가 있을 거 같다”고 평가했다. 또한 “게임을 하고, 안 하고로 문제 삼기엔 오늘날 게임은 모든 사람이 즐기는 여가 생활로 자리잡았다”면서 “그럼에도 상당수 연구는 여전히 과몰입 같은 문제 연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덕현 중앙대 교수는 게임이 대뇌의 구조, 기능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게임이용자 임상의학 코호트 연구’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선 성인(대학생) 게임이용자 및 중·고등학생 게임이용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뇌 MRI(구조, 기능 이상 여부), 지능 검사, 인터뷰, 자가보고식 설문 등을 진행했다.

한 교수는 “성인과 청소년의 경우 뇌 기능 분석 결과 각 집단별로 각각 독특한 특성을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전반적으로 통계적 유의성을 보이는 결과보다는 흔적(trace) 결과들이 많이 있었다. 이는 참여자의 숫자와 종적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패널 토의에서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는 “게임을 소비하는 방식도 바뀌고 유행하는 게임도 바뀌고 있다”면서 “모든 장애 이슈가 그렇지만, 아이에게만 문제가 있다기보다 사회 시스템적인 문제가 더 크다. 게임 과몰입도 시스템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연구소 소장은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듯 게임 과몰입군은 정말 소수라는 게 다시금 밝혀졌다”면서 “그럼에도 조사를 위해 비슷한 숫자로 선용군과 과몰입군의 비율을 맞추면서 대외적으로 편견을 갖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게임은 문화, 스포츠, 공연 등과 연계해 활발히 실현되고 있다. 게임의 긍정적 영향을 용어적으로 보다 강화했으면 좋겠다”고 첨언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