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지난해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명실상부 2010년대 후반 최강팀이다. 왕조의 상징과도 같은 ‘한국시리즈 3연패’ 달성은 실패했지만 7시즌 동안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해 꾸준함과 화수분의 상징으로 통했다.
하지만 김태형 감독 계약 마지막 해인 올 시즌은 확연히 힘에 부치는 모양새다. 쉼 없이 달려 온 7년 동안 선수 이탈이 너무 잦았다. 스토브리그만 열리면 주축 선수들이 FA로 친정팀을 떠났고 트레이드와 보상 선수로 최소한의 전력 보강이 이뤄졌을 뿐 주전급 백업의 성장에 기댄 ‘잇몸 야구’가 어느덧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았다. 남은 주축 선수들의 노쇄화에 더해 활약하던 새로운 얼굴들도 부상으로 시름하면서 시즌 초반 중위권에서 선두를 위협하던 기세는 시들해졌다.
마운드에선 지난해 MVP 아리엘 미란다의 몰락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대체 선발로 합류한 영건들이 불펜에서 이탈하면서 뎁스가 급격히 얇아졌다. 정철원이라는 샛별이 등장했지만 기대했던 장원준 이현승 김강률 등 베테랑 불펜들의 활약이 아쉬웠다.
타선에서는 ‘115억 FA’ 김재환의 전반기 부진이 길어지고 양석환이 부상으로 이탈한 기간 장타력이 급감하면서 매 경기 쥐어짜는 운용이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리그에서 가장 탄탄한 수비를 자랑하던 내‧외야는 김재호 오재원 등 센터라인 핵심 선수들의 노쇠화와 젊은 선수들의 경험 부족이 맞물려 리그 최다 실책 1, 2위를 다툴 정도로 무너졌다.
후반기 두산 반등의 키는 최근 타격감을 회복하고 있는 김재환 양석환 허경민 등 핵심 선수들의 반등과 김인태 안권수 등 가능성을 보여준 유망주들의 부상 회복 및 기량 만개에 달려있다. 더불어 미란다 대체 외인으로 합류한 좌완 브랜든 와델이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책임져 줄 필요가 있다.
2010년대 초반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왕조’를 구축했던 삼성의 몰락 역시 예상 밖이다. 왕조 해체 이후 짧은 리빌딩 기간을 거친 삼성은 지난 시즌 KT와 함께 정규리그 승률 공동 1위에 오르며 명가 부활을 알렸다. 올 시즌도 봄까지 중위권 다툼을 펼쳤지만 날씨가 더워지자 급격히 페이스가 가라앉았다. ‘여름성’이라는 별명이 무색한 무기력한 경기력이 이어졌고 14일 KT 위즈전에서 패배하면서 창단 이후 최다 11연패라는 수렁에 빠져 있다.
마운드 붕괴가 심각한 수준이다. 연패 기간 경기당 평균 10점 가까운 실점을 허용하며 자멸하고 있다. 이번 달 들어 선발진 평균자책점은 7점대, 불펜 평균자책점은 10점 대로 5월(선발 3.59, 불펜 3.92) 대비 급격히 치솟았다. 특히 믿었던 ‘끝판대장’ 오승환이 6일 LG전, 9일 SSG전, 12일 KT전까지 3차례 등판에서 연이어 무너지는 낯선 모습으로 경기 매조지에 실패했다.
타격 사이클도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 연패 기간 2점 이하 경기가 5차례나 있었고 타선이 폭발한 날에는 마운드도 같이 폭발하며 투타 엇박자가 이어졌다. 경기 후반 리드를 까먹는 경기 운용이 속출하면서 허삼영 감독에 대한 여론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팬들의 트럭 시위와 스케치북 검열 논란 등이 터져 나오며 경기장 안팎으로 뒤숭숭한 분위기를 수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두산과 삼성 모두 최근 수 년간 모기업의 투자 의지가 위축된 상황에서 육성과 내부 FA 단속 등 최소한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리그를 돌파해 온 공통점을 보여 왔다. 하지만 올해 두 명문 구단이 보여주고 있는 부진은 스포츠에서 투자 없는 결과란 연료 없이 영원히 돌아간다는 ‘무한동력’과 마찬가지로 허상임을 확인시키는 씁쓸한 결론으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왕조든 공화정이든 2020년대에도 두산과 삼성이 여전히 강팀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구단의 현재와 한계를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새로운 비전과 방향성을 정립해 후반기 팀을 추슬러야 할 때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