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PC 화면 속 ‘전자해도’에 출발지와 도착지를 지정하자 경로가 저절로 계산돼 지도 위에 떠올랐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과 비슷하지만 또 다르다. 도로와 달리 지형, 장애물, 수심까지 고려해서 경로를 만든다. 경로를 완성하고 태블릿PC 화면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모터 소리가 크게 울리면서 정박해 있던 배가 ‘스르륵’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끄럽게 바다 위를 달리는 동안 운항석에는 누구도 앉아 있지 않았다.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다.
곧이어 전방에서 비슷한 크기의 6인승 보트가 나타났다. 배를 조종하는 사람도 없는데, 이대로 가면 부딪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배는 저절로 방향을 틀면서 비켜갔다. 보트를 피하고 난 뒤에는 다시 원래 설정한 경로로 돌아왔다.
자율운항 시스템 ‘하이나스(HiNAS)’를 탑재된 레저보트는 12일 인천 중구 왕산마리나에 모습을 드러냈다. 20여분간 사람들을 태우고 약 2.5㎞를 운항했다. 이 레저보트는 아비커스에서 개발한 ‘하이나스’를 적용한 자율운항 선박이다. 자율운항 시스템은 아직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운항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해상 모빌리티에서 핵심기술이다.
하이나스는 인공지능(AI)이 선박 주변을 자동으로 인식해 충돌 위험을 판단하고 이를 증강현실(AR) 기술로 보여주는 솔루션이다. 이를 기반으로 자동항로계획을 세우고 자율운항을 한다. 딥러닝을 기반으로 해서 ‘항해 물표’를 탐지해 스스로 피하는 등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자율운항솔루션 전문 계열사인 아비커스는 2020년 12월 사내 벤처로 출범했다. 한국의 자율운항 선박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현재 2단계 자율운항 솔루션인 하이나스(HiNAS) 2.0 개발을 끝냈다. 지난달에 18만㎥급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자율운항 대양 횡단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는 처음으로 자율운항 기술로 선박을 제어해 대양을 횡단한 세계 첫 사례다.
자율운항 기술은 선원들의 고령화와 인력 부족을 해소할 열쇠로도 떠오른다. 해운업계는 인력난 해소, 안전성 제고, 오염물질 저감 등에서 톡톡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 선박 시스템을 ‘선원 의사결정 지원(1단계)’ ‘선원 승선 원격제어(2단계)’ ‘선원 미승선(혹은 최소인원 승선) 원격제어와 기관 자동화(3단계)’ ‘자율운항 시스템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조치하는 완전 무인 자율운항(4단계)’로 구분한다.
인천=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