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개 판결에도 봉인된 서해 공무원의 ‘오전 8시32분 이후’

입력 2022-07-12 09:33 수정 2022-07-12 10:18
서해 피격 공무원 이대준씨의 형 이래진씨와 국민의힘 공무원 피격 사건 진상 조사 TF가 지난 2일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무궁화 35호에 탑승해 국화를 바다에 던지며 이씨를 추모하고 있다. 이래진씨 페이스북

해양경찰청이 서해 피격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 사건 관련 초동수사 자료 가운데 일부를 아직 유족에게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11일 파악됐다. 유족 측은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승소해 약 2년 만에 여러 자료를 제출 받았는데, 당시 해경의 상황보고서의 경우 특정 시점 이후로는 받지 못했다며 은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씨의 유족은 사건 관련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해경이 최근 항소를 취하함에 따라 사건 당시 인천해양경찰서 상황보고서 등을 제출받았다. 당초 유족은 해경에 ‘초동수사에 관한 자료(보고서, 조사서 등 명칭 불문)’ 공개를 요청했지만, 해경은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된다며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유족은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강우찬)는 서해어업관리단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제외한 정보는 모두 공개돼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해경은 초동수사 자료 중 인천경찰서 상황보고서를 2020년 9월 23일 오전 8시 32분자까지만 유족에게 제공했다. 이 보고서의 제목은 ‘인천, 소연평도 무궁화 10호 선원 실종 관련 수색계획(3일차) 보고/통보/지시’로, 보고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인천해양경찰서는 이씨가 북한에서 발견된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유족 측은 이씨의 발견 소식이 일반에 알려진 이후의 상황보고서를 제출받지 못했다는 점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국방부는 2020년 9월 23일 오후 1시30분쯤 이씨가 북한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됐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11시쯤 정보당국 관계자를 통해 이씨가 북측의 총격을 맞고 숨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가 실제 사망한 시점은 22일 밤이었다.

유족 측은 당시 청와대나 국방부가 해경에게 이씨의 발견·사망 사실을 뒤늦게 전파해 구조 실패에 일조했고, 이 같은 정황이 상황보고서에 나와있기 때문에 해경이 특정 시점 이후 보고서를 제공하지 않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씨 사망 다음날까지 수색 작업을 벌였던 그의 친형 이래진씨는 “그때까지 같이 수색을 하던 서해어업관리단장도, 무궁화 10호 선장도 동생의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경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행정법원의 판단과 양측의 협의에 따라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족의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판결문 어디에도 상황보고서를 23일 오전 8시32분자까지만 제공하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와있지 않고, 당시 그러한 내용으로 합의를 한 적도 없다”며 “해경이 유족에게 제공해야 하는 상황보고서를 임의로 취사선택한 것이 아닌가”고 반박했다.

유족은 23일 이후의 상황보고서 등을 입수하기 위해 해경에 추가정보공개 청구를 최근 접수했다. 검찰이 해경과 국방부, 국정원에 대한 강제수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해경이 일부 기록을 비공개한 경위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