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 <서교동에서 죽다>

입력 2022-07-11 08:53

<서교동에서 죽다>(극단 백수광부, 작 고영범, 연출 이성열, 드라마터그 조만수, 시어터 쿰) 은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극 중 인물 진영(박완규 분)이 암으로 투병 중인 누나 진희(서진 분) 병문안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자전적 이야기이다. 기억이 퇴화(退化)되어가는 시대에 작가의 과거 삶을 무대로 소환해 내는 고백적 서사는 소설과 영화, 드라마에서도 극적 장치로 설정되는 흔한 방식이기도 하다. 프레시백으로 투사되는 작가적 상상이 극적 판타지로 전이되어 강렬한 파열음으로 무대, 텍스트, 이미지로 드러날 때 고백적 서사는 현재화 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고영범은 젊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희곡 <태수는 왜?>, <이인실>, <방문>등의 희곡을 써오고 있는데 알려진 작품으로는 한국 독립운동을 상하이와 전 세계에 알린 현순 목사(玄楯,1880~1968)의 아들 ‘피터 현’(1906~1993)을 조명(照明)하면서 한국 사회 역동적인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는 <에어콘 없는 방>이 있다. 역사 속에 내재하고 있는 실존 인물의 격동의 삶을 전면에 배치하고 역사의 비극으로 발화되는 <에어콘 없는 방>의 습한 질곡의 역사는 피터 현의 '기억의 방식'으로 소환되어 여전히 한국 사회 논쟁이 되는 오류들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박제되어 버린 역사가 아니라 기억되고 치유되어야 하는 시간임을 무대로 명시한다.


<에어콘 없는 방>의 기억방식은 역사의 투쟁과 희생의 기록이다.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해방, 한국전쟁의 시대와 이념, 미군정과 유신시대, 세계사적 사건들을 파편적인 기억의 방식으로 소환되면서도 국가와 역사, 정치, 시대적 분열(이념)로 연결되어 역사적 희생이라는 담론을 담아내고 있다. <서교동에서 죽다>는 특별한 극적 서사나 가공된 작가의 조미료가 없으면서도 무대는 담백하고 작가의 고백을 듣고 있으면 70년대 아날로그 풍경에 동화된다. 이처럼 고백 서사는 작가의 말처럼 ‘소소한 한 아재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파편적인 기억의 서사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작가의 ‘가족사’ 이면서도 시대의 연대감이 묻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영범 작가가 기억으로 복원하고 무대로 재생시키는 기억의 방식은 <에어콘 없는 방>처럼 역사, 시대, 이념의 담론들이 서사의 통로로 연결되지 않으면서도 삶의 통증과 아픔이 진솔하게 배어 있고 가슴을 타격하는 맛이 시큼해진다. 이것이 작가의 무기(武器)인데, 이 무기를 연출의 전술로 그려내고 배치하는 전략이 70년대 홍대거리와 서교동의 주택가를 기억해 내는 색다른 방식으로 <서교동에서 죽다>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 시시콜콜한 ‘기억의 방식’

작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는 70∼80년대 부촌(富村)으로 상징되던 서교동 주택가 시절도 소환되고 아버지 사업 실패로 화곡동 시장통으로 이사해 능숙한 솜씨로 연탄불을 갈아치우던 기억들로 포개진다. 엄마의 과일가게 장사 이야기, 고교 시절 안국동 운현극장 김인태 배우의 <세일즈맨의 죽음>의 기억들, 버스를 타고 서교동 작은아버지 댁으로 심부름 다니며 객기로 ‘시장통 아이’가 되어가는 진영과 진수의 과거들이 흑백사진의 선명한 이미지로 재생된다. 작가의 과거 기억들은 홍대 입구 사거리 찌개 집 2층에서 문득 내려다본 풍경을 통해 과거 이미지가 재생된다. 청기와 주유소 인근 서교동 주택가가 개발되기 이전 개천가에서 뛰어놀던 아이의 모습이었다. 작가는 그 후로부터 10년에 걸쳐 아이의 모습이 잊을만하면 떠오르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작가기질로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기억의 정점(頂點)에는 동생의 죽음과 가족의 삶, 아버지의 죽음이 맞닿아 있다. <서교동에서 죽다>는 자전적 이야기이면서도 흉터로 패어 있는 가족사를 통해 죽은 동생과 마주하고, 아버지 사업 실패로 서교동을 떠나 연탄불을 갈며 버티던 화곡동 시절과 죽음들을 기억해 낸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화해와 용서의 마음을 내밀 때는 등장인물과 마음이 동화되고 짠하다. 기억은 서사의 중요한 극적인 장치로 활용되기도 하고 뻔뻔한 작가의 상상력이 발동되어 서사를 확장하기도 하지만 <서교동에서 죽다>는 서술 장치에 기술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기억이 퇴화되어가는 시대에 70년대는 나의 이야기이고, 시대의 상처이기도 하다.


| 기억과 죽음

무대는 62년생 극 중 인물 진영(박완규 분)의 파편적인 기억을 재현하는 시간의 방처럼 느껴지는 구조다. 직사각형의 무대의 4면은 직선으로 촘촘하게 갈라져 있으면서도 면의 간격은 불규칙한 선(線)이 보이는 나무 마루로 무대 바닥을 채우고 무대 뒤쪽은 바닥을 경사진 사선으로 올려 현재와 과거( 화곡동 시절 아버지의 방, 운현동 실험극장의 세일즈맨의 죽음)의 한 장면을 재현시키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앞 무대 공간은 현재의 공간(편의점, 병원)과 과거와 현재를 병치하는 공간(화곡동 시절과 서교동 집, 만화가게, 버스 안, 진수의 어린 시절, 시장통, 진희의 이혼 이야기)등의 공간이다. 마루구조와 동일한 무대 좌우 뒷면은 영상을 투사해 진영의 무이식으로 존재하는 서교동의 길가, 개천, 70년대 동네 전경과 진영의 파편적인 이미지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과거 시간의 이미지(장소)들을 투사해 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서교동에서 죽다>의 극 중 인물 진영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과거기억을 재현해 내는 서술자이자 일인칭 화자(話者)로 특정기억을 설명하기도 하고 과거 시간의 시점에 따라 과거와 현재의 인물로 분하면서 고백적 서사를 꺼내 놓기도 한다. 극은 진영이 ‘시시콜콜한 한 아재의 이야기’라고 숨기지 않고 시작되는데 미국에 온 진영은 캐리어를 끌고 누나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부터 극은 전개된다.


진영의 기억이 발현되는 시점은 ‘디지털창작콘텐츠과’에 다니는 조카 도연(강해진, 이하늘 분)으로부터다. 도연은 “사람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잖아요. 엄마, 아빠하고 살아온 시공간을 하나의 거대한 김밥이라고 생각하고, 잘 드는 칼로 그 단면을 자르는 거예요. (중략) 그 특정 시공간에 있는 엄마랑 아빠한테 가는 지도를 만드는 거예요. 이를테면, 일곱 살 때 엄마 아빠랑 과천 동물원에 갔던 적이 있어요. 어린이날, 녹번동에 살 때였고, 전철을 타고 갔어요. 그 길을 가능한 한 그대로, 세밀하게 복원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기억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은 시간의 복원을 통해 중2때 이혼한 부모님으로부터 분열되었던 자아를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감으로써 손상된 시간과 자아를 잘라내지 않은 퉁퉁한 김밥 한 줄처럼 회복하고 싶은 무의식의 욕망이다. 도연은 “전 그때의 그 애가 내 등 뒤 어딘가에 붙어있다고 상상하곤 해요. 어느 날 너무 너무 피곤하고 우울하면 그 애가 물에 젖는 솜처럼 내 등에 업혀 있는 거라고 상상해요”라고 말하면서 과거 시간의 흉터는 트라우마로 나타나고 “자신을 붙들고 있는 과거의 존재들과 직접 부딪히는 기억의 여행”을 제안한다. 진영은 홍대 입구 앞 청기와주유소를 지나 서교동 주택과 화곡동 시절로 돌아가며 동생과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고 도연은 잃어버렸던 시간을 바라보게 된다. <서교동에서 죽다>에서 과거 시간을 온전하게 기억하는 인물은 누나 진희(서진 분)과 형 진석(박정민 분)이며 진영의 노모(린다 전 분)는 여전히 화곡동에서 과일 장사를 하던 시절 연탄불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아들 진수의 죽음에 멈추어져 있는데 도연이를 향해 “진수야, 진수야”를 부르고 도연은 어린 시절 진수(삼촌)가 되어 노모와 진영의 과거기억을 동행하면서 기억의 조각보를 하나의 소설로 완성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대가 진영의 과거로 들어가는 것은 1979년 안국동 운현극장에서 <세일즈맨의 죽음> 통해 기적을 경험했던 이야기부터다. 홍대에서 도연이를 만나면서부터 청기와 주유소 길가와 개천가 이야기, 버스회사를 하던 아버지 이야기와 사업 실패. 89번 종점 화곡동으로 이사해 과일가게를 하며 시장통 아이로 자란 시절의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마귀할멈이라 불리던 선생님께 채변봉투로 맞은 이야기가 장면으로 그려질 때쯤 웃음이 터지고 버스 회수권으로 동네 만화가에 드나들던 장면을 소환할 때쯤 기억은 선명해진다. 빈 무대는 진영의 기억과 병치 되면서 과거 시간의 장면으로 때로는 현재와 과거가 중첩되며 파편적인 기억들은 극 중 장면으로 재현되어 작가고백은 무대서사로 포개진다. 기억의 시간들이 반환점을 돌 때쯤 진영은 아버지 방 연탄불을 관리하던 이야기에서 극은 종점을 향한다. 세 살 터울인 진영을 작(짝)은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동생 진수는 형이 알려준 대로 연탄불을 갈다 가스중독(일산화탄소)으로 죽음을 마주하게 되고 촛불을 들고 촛농으로 개미집을 만들며 삶의 초점을 잃어간 동생의 죽음과 시간의 기억들이 과거에서 현재로 선명해질 때쯤 진영의 서교동, 화곡동 시절의 죽음과 가족사는 도연을 통해 <서교동에서 죽다>로 완성되고 그 기억은 한 개인의 가족사가 아니라 시대의 상처로 기억되고 기록되어야 할 소설로 텍스트화 된다. 비로소 진영은 기억의 복원을 통해 시간의 흉터는 동생을 향한 용서와 아버지를 향한 화해를 기억의 재현을 통해 마주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는 것이며, 잘나내지 않은 퉁퉁한 김밥 한 줄의 시간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 배우들의 연기로 ‘극’이 되는 기억의 서사

작가의 고백적 서사가 연극적인 무대로 무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배우 박완규의 노련한 연기가 빈틈을 보이는 기억의 서사를 극적인 서사로 탄력적인 살점을 붙였으며 배우의 연기가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듯 박완규는 무대에서 정점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대구 출신 배우 박정민의 독특한 화술은 특징적인 배우의 언어로 자기화 되어 있으면서도 인물의 대사와 캐릭터를 튀지 않는 연기로 용해시켜 내는 배우다. <서교동에서 죽다>의 작가의 기억을 따라갈 수 있었던 성공의 7할은 배우들의 연기에 있었고 특히 진수의 어린 시절로 분한 아역 강민재는 반복적인 연습의 양이 보이면서도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3할은 이성열 연출이 무대로 배치하는 극 중 장면의 구도와 진영의 기억을 복원해 내는 과거-현재의 공간을 무대 3면을 통해 특징적으로 배열해 선형적 기억의 시간 이동을 입체적으로 구현해 내는 이성열 연출다운 감각이 돋보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극적인 텍스트로 드라마가 빈약하다는 것이고, 마지막 노모의 장면은 컬러 화면에서 흑백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서교동에서 죽다>는 7월 17일까지 대학로 씨어터 쿰에서 공연되고 감정의 힐링을 받고 싶다면 볼만한 연극이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