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총격범 야마가미 데쓰야의 범행 동기가 특정 종교 단체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0일 범인은 어머니가 빠진 종교 단체 행사에 아베 전 총리가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고 범행했다고 보도했다. 잘못은 기본적으로 범인에게 있지만 범행 동기가 종교와 관련 있다는 대목에서 종교의 올바른 사회적 역할과 기독교의 존재 이유를 돌아보게 된다.
서울일본인교회에 파송돼 40년 넘게 사역해온 요시다 고조 목사는 이날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정이 파괴된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일본인 가운데 기독교와 사건에서 언급된 종교를 같은 종교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수십년간 국제 기독교 연합 단체에서 사역한 A씨는 “총격범이 원한을 품은 것으로 알려진 종교 단체는 일본에서 매우 공격적으로 포교해 왔다. 해당 종교 신자들은 재산을 헌납하고 가족 간 갈등을 많이 겪었다”며 “그의 범행 동기가 보도된 대로라면 해당 사건은 신흥 종교나 사이비 종교가 세력 확장을 위해 쓴 수법이 낳은 사회적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유력 정치인이 공격 대상이 된 것 역시 포교와 연관 있다는 해석이다. 그는 “신흥 사이비 종교는 그 본질을 숨기거나 사회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정치적 보호가 필요하다”며 “주요 정당이나 유명 정치인에게 선을 대 지지 의사를 표시하거나 정치 자금을 대는 방법을 동원한다. 이 사건은 그런 과정에서 불거진 극단적 폭력일 수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신흥 사이비 종교와 정치권의 결탁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A씨는 “우리 사회, 특히 기독교인들은 신흥 사이비 종교가 안정적 포교나 세력 확장을 위해 정치와 결탁하거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여러 활동을 경계해야 한다”며 “특히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만희 교주)에서 유사한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4월 국민일보와 코디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 정도는 종교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했다. 종교가 필요한 이유로는 ‘도덕성 고양’(26.1%)과 ‘사회의 공동선 추구’(20.2%)가 꼽혔다. 종교의 바람직한 역할을 묻는 복수 응답 질문에선 ‘이웃에 대한 사랑’(82%) ‘현실의 고통을 이기게 해주는 것’(75.5%) ‘사람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것’(72.9%)이란 답변이 많았다.
A씨는 “사랑을 퍼뜨려야 할 종교가 미움을 퍼뜨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기독교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잘 실천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널리 확산하면 좋겠다”고 했다. 일본 선교단체에서 20년 넘게 사역해온 B씨는 “해당 종교 때문에 일본에서 사역하는 한국 목사들과 신도들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이비 종교와 구별된 모습으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각 분야에서 생명을 살리는 복음 전도자로 거듭나자”고 했다.
일본 현지에서는 아베 전 총리 저격 용의자의 범행 동기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교는 야마가미 데쓰야의 어머니가 신자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통일교 관계자는 11일 “일본 본부 쪽에 물어보니 총격범의 어머니가 과거 통일교 신자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안 다닌다고 한다. 헌금 액수는 확인이 안 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근래 신천지에서 종종 가족 간 종교 갈등이 불거져 논란이 됐다. 한 신학대 교수는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사건을 두고 신흥 사이비 종교 현상을 비판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강주화 임보혁 유경진 기자 rula@kmib.co.kr